▶ “40여년 방송외길 걸어온 정상의 앵커”
▶ 조지 모스코니 SF시장 암살사건 최초 보도...다뉴바 출생 한인 3세로 주류방송영역 개척
KCBS라디오 뉴스 앵커 커티스 김(67, Curtiss Kim)은 40여년 베이지역 방송계를 누빈 베테랑이다. 굵직한 사회적 사건들을 보도하며 방송에 헌신한 그의 삶은 베이지역의 한 역사이기도 하다. 정상의 앵커가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이야기를 들어본다.
▲KCBS 라디오 앵커로 하는 일은
-나는 KCBS라디오(AM 740, FM106.9)에서 두가지 일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뉴스를 전하는 앵커와 발로 뛰는 취재기자(a general assignment reporter, 담당영역없이 모든 것 취재)이다. 기자들의 취재를 취합해 만든 뉴스원고를 청취자에게 전하는 한편 현장에 나가 뉴스 메이커와 인터뷰하고 기사(사건보도, 속보, 특집 등)를 작성해 보도하고 있다.
▲앵커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KCBS와 같은 주류언론에서 일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주립대(SFSU)에서 방송통신예술을 전공한 후 KNBR/NBC Radio(SF), KFTY-TV News Channel 50(산타로사), KSRO-AM NewsTalk 1350(산타로사) 등 노스베이 여러 라디오 방송국에서 다년간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소규모 방송국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면 KCBS 같은 라디오방송국에 들어오기 어렵다.
▲앵커에게 필요한 덕목은
-최신뉴스 섭렵, 작문 스타일 개발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명확 간결 정확하게 전해야 하며 스토리의 중요 부분과 생략 부분을 바로바로 구별해내야 하는 판단력이 요구된다. 때때로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위기대처능력과 실시간 달라지는 속보를 처리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앵커의 화려한 명성 이면에 따라오는 비난과 비평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객관성이다. 저널리스트는 정확하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반응하며, 공감능력이 선행돼야 한다.
▲어떤 뉴스를 전할 때 힘든가
-지진, 홍수, 화재 등의 뉴스를 다룰 때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1978년 조지 모스코니 SF 시장과 하비 밀크 수퍼바이저가 SF시청에서 암살당했을 때 최초로 보도해 당시 근무했던 NBC라디오와 로컬 신문의 찬사를 받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지난해 12월 오클랜드 고스트워십 화재시 사망자 다수 발생(36명 사망) 가능성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인종차별로 어려움을 겪은 적은
-방송계는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불안, 질투, 시기, 자기중심적 에고이즘이 방송 환경의 일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80년대 차별철폐정책(affirmative action)이 시행되면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내가 소수계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느꼈다. 그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는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KNBR 라디오에 채용됐을 때 한 매니저는 나를 쫓아내려고 갖은 수를 부렸다. 결국 그 라디오는 매각됐고 그 매니저는 직장을 잃었다. 이미 나는 다른 라디오국으로 옮긴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처음으로 분개를 경험했고 사회적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은 아시안 비율이 방송계에 늘어나 뿌듯하다.
▲청취자들의 반응은
-내 뉴스를 즐겨 듣는 청취자들은 나의 오랜 진행을 인정한다. 일부는 내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청취자들도 있다. 라디오는 TV 뉴스 기자나 앵커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수상경력은
-나는 TV와 라디오 보도로 총 8회 Associated Press Mark Twain Awards, 뉴스 보도로 총 3회 Radio-Television News Directors Association Awards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아시안 어메리칸 저널리스트협회에서 수여하는 Life Time Achievement Award의 영예도 안았다.
▲어린시절 성장한 곳은
-나는 캘리포니아주 샌호아퀸밸리 농업공동체인 다뉴바(Dinuba)에서 태어났다. 포도, 면화, 감귤류 작물을 수확한 한인 이민선조들의 터전이 되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내 부모님 모두 한인 2세였다. 내가 7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나와 두 남동생에게 더 좋은 교육기회를 주기 위해 안정된 샌호아퀸밸리 생활을 뒤로 하고 마린카운티로 이주했다. 아시안이 거의 없는 새 환경에서 나는 부모님의 도전을 성공으로 갚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들이 나에게 물려준 정신적 유산은 크다. .
▲가족을 소개한다면
-아내 산드라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오클랜드 서터메디칼센터의 RN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딸 카라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주검찰청의 검사이며 아들 카메론은 뉴욕 NBC 스포츠 넷의 비디오 에디터로 있다.
▲한국에 대한 생각은
-올해 초 아내와 2주간 일본 여행을 하던 중 4일간 서울에 머물렀다. 현대적이고 바쁜 삶의 스타일에 감탄했다. 그러나 분단된 국가라는 사실과 이산가족에 대한 소식을 듣는 것은 슬프다. 내가 살고 있는 마린카운티는 한인커뮤니티와 교류할 곳이 거의 없어 유감스럽다. 나는 아시안아메리칸 저널리스트협회원으로 아시아계와 네트워킹을 갖고 있다. 때론 방송계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해받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내가 한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계획은
-오는 5월이면 68세가 된다. 결혼생활 44년동안 두 자녀와 두 손자를 얻었다. 은퇴 후에는 시니어로 생을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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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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