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헌법은 지금 미국의 최상위 법이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1787년 연방 헌법이 제정되기 이전 미국은 ‘연방 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이라는 헌법을 갖고 있었다.
이 법은 각 주를 사실상 독립된 정부로 보고 중앙 정부는 주정부의 동의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었다. 대통령도 행정부도, 사법부도 조세권도, 군대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전쟁을 해야 했던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정부 형태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중앙 정부를 골자로 하는 헌법 제정과 통과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 정부의 횡포에 진력이 난 식민지 지도자들 상당수는 조세권을 갖고 상비군을 둔 연방 정부의 창설을 극구 반대했다. 다시 각 주민들의 권리를 짓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을 달래기 위해 제정된 것이 소위 ‘권리 장전’으로 불리는 수정 헌법 10개 조항이다. 이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1조로 “연방 의회는 종교를 창설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하거나 언론과 출판의 자유와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 그리고 정부가 잘못한 일을 시정해줄 것을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돼 있다.
‘종교의 자유’를 수정 헌법 1조의 제일 앞머리에 둔 것은 미국 창업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신대륙으로 건너 온 영국인들의 상당수는 본국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립고 편한 고향땅을 떠나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미국에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들고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서로 죽고 죽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이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가 종교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은 지난 200여년간 적어도 종교 문제로 정부가 국민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은 없었다.
회교 6개국 국민들의 미 입국을 일시 금지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 명령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지난 주 버지니아 연방 항소 법원은 10대 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 행정 명령이 비관용적이며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시행을 정지시켰다.
205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이 법원은 트럼프의 행정 명령이 “막연하게 국가 안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종교적 불관용과 적의, 차별로 차고 넘친다”고 밝히고 트럼프가 작년 대선 유세 기간 중 “미국에 들어오는 회교도의 완전한 입국 금지”를 약속했다며 이 명령은 종교적 적의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유세 기간 중에는 표를 얻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며 이를 무시해달라고 주장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유권자들이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은 그가 한 말과 정책을 보고 결정하는 것인데 유세 기간 떠든 말을 보고 정책을 집행한 후 그 말을 무시해달라는 것은 당선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법무부는 항소 법원에서 패소한 후 즉시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혀 이 문제는 결국 연방 대법원이 결정하게 됐다. 올해는 연방 헌법이 제정된 지 230년,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 대법원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선언한 헌법 정신을 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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