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세명의 시누이가있다. 도로레스는 제일 큰 시누이다. 우리들이 약자로 도디라고 불리우는 그녀는 남편의 누나인데 남편이 군에서 제대를 하고나서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로 가지 않고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오게된 가장 큰 이유가 도디가 마침 샌프란시스코 근교인 포스트시티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살면서 운명적인 기회를 만나게 되는데 말하자면 도디가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준 사람이다. 우리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약 한달간을 살다가 남편이 쉐브론에 취직이 되어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나와 처음엔 마리나 근처에 살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 금융계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인 봅과 한살이 좀 넘은 미셀이라는 딸과 함께 살고있었다.
처음에 우리들은 일주일마다 만났다. 매주 금요일이면 그들은 와인 한병을 가져와 내가 만든 볶음밥과 함께 먹고 놀다가 갔다. 봅은 성격이 호탕하고 긍정적이지만 도디는 얌전하지만 조금은 새침하고 까칠한 편이다. 나도 미국에 온 다음해 딸 아이를 낳았고, 그동안 그들은 집을 사서 리버모아란 동네로 이사를 간뒤로는 거리가 멀어 드문드문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그녀를 가장 고맙게 생각하게 된 것은 오년 동안 떨어져 살았던 두 아들을 미국에 데리고 올때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내 과거를 고백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한번 결혼한 적이 있고 아들이 둘 있는데 이제 미국으로 데리고 오려한다고,그동안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다고…. 그말을 듣고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어딘가에 다 자란 아들이 있어서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나를 끌어 안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벌써 그게 사십년도 더 넘은 이야기다.
어제 미국 독립 기념일을 기해 막내네 집에서 오랫만에 도디와 봅과 그의 딸 미셀네 가족까지 모여 바베큐 파티를 했다. 미셀도 이제 아이가 셋인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오랫만에 보는 도디는 그동안 그야말로 몰라보리만큼 바싹 늙어버렸다. 백인들은 피부가 동양인보다 얇아서 늙으면 주름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생긴다. 주름도 주름이지만 등도 굽어지고 많이 말라서 살짝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질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 그녀가 안스러웠다.
옛날 한때는 그녀도 꽃처럼 예쁜 때가 있었다. 갸름한 얼굴과 초록빛을 띤 헤이즐 색깔의 눈이 신비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제 오십년의 세월이 흘러가자 우리 세대는 다 함께 볼품 없이 늙어가고 아이들도 중년의 모습으로 변하고, 손자 손녀도 대학을 가는 자와 또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 자신들의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들을 자랑하느라 법석이었다.
“나는 늘 쓸데 없는 걱정거리로 잠을 설치고 있어” 그렇게 푸념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걱정거리가 없는 그녀가 왜 그런 마음으로 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많고 아직 지병도 없는 그녀가 별로 만나는 친구도 없이 늘 집에서 혼자 쓸쓸하게 지내며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돌아오는 길에 내가 도디의 문제를 꺼내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어릴적 가난하게 자란 사람들은 나중에도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이 되기가 쉽다고. 왜냐하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이 그렇게 만든다고…. 난 속으로 두 남매가 그런 면에서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늙어가며 주변에 제일 필요한 사람들은 가족들이 아니라 친구들이라는 답이 나왔다고 어느 대학에서 오랜 연구 끝에 이런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느땐 더 상처를 주고 더 문제도 만들지만, 친구들은 그냥 만나고 즐기면 된다는 것이다. 싫으면 안만나면 된다. 그래서 진정한 부자는 물질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는 얘기다.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도디가 좀더 행복해져 옛날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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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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