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 역사학박사하와이대학교 은퇴교수
한국학을 세계인에게 제대로 알리고, 이민종가 이민사 발굴에 앞장서며
행동하는 학자로 하와이 한인사회 자존감 높인 '역사의 산 증인'
한국 역사학계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던 하와이 한인이민역사가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을 전후해 하와이대학교 역사학과 최영호(1931년생) 은퇴교수에 의해 한국은 물론 세계 역사학계 근현대사의 한 장으로 그 학술적 위치를 견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학자로서의 현실 참여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민자로서 최영호 박사 의 삶의 발자취에 그 답이 담겨 있다. 경북 경산 출신인 그는 경북고 졸업 뒤 대구사범 사학과에서 수학했다. 한국전쟁 때 자원 입대, 58년 소령으로 예편한 뒤 그 해 미국으로 유학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 학사과정을 마치고 시카고 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하고자 했지만 한국학 연구자가 전무한 현실에 눈을 뜨고 ‘개화 이전 전통시대’로 세부 전공을 바꾸고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하와이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부임해 2007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역사를 미국에서 제대로 알리는데 앞장서 온 최 박사는 특히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학에서 소홀히 다루어지거나 왜곡된 한국학 서술을 바로잡는 데 힘을 쏟았다. 유네스코 지원 아래 만들어진 ‘한국전통자료집’ 발간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또한 초기 한인 이민자들에 관한 책 ‘무궁화 땅에서 건너와(From the land of Hibiscus : Koreans in Hawaii)’를 출간했다.
2011년에는 하와이 내 일본인 포로수용소로만 알려졌던 호노울리울리 수용소에 한국인 2,700여명이 수용되어 있었던 사실이 적시된 역사적 자료를 발굴해 이를 세상에 알리며 역사학자로서의 연구활동에는 정년이 따로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논문은 자칫 일본계 미국인 수백 명이 겪은 핍박의 이야기만 후세에 전해질 뻔 했던 역사에 일본에 의해 징용당해 부역했던 한국인의 한 많은 삶의 발자취도 살려 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 최 박사는 제3의 이민물결을 타고 건너 온 하와이 한인들의 인권수호를 위해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며 그 자신 하와이 한인이민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
최 박사가 하와이에 정착했던 1970년대는 1965년 새로이 개정된 미국 이민법에 의해 이민자들이 급증하던 시대로 한국에서 갓 이민 온 한인가정 특히 청소년들이 이민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갱단을 조직하는 등 하와이에서 크고 작은 사회문제를 야기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박대희 목사와 손잡고 청소년 방과후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한인청소년들의 이민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펼쳐나갔다. 이 프로그램은 갈리히 지역 YMCA와 연계해 1980년대 초창기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1978년경에는 하와이 유명 석간 스타블리틴지에 하와이 술집의 문제들을 지적하는 기사가 게재되며 문제의 술집을 '코리안 바'로 지칭하며 모든 문제의 근원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바에서 야기되는듯한 인종차별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를 읽고 분개한 최 교수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사를 게재한 신문사를 찾아가 주필과 면담을 하고 기사가 왜곡되었음을 지적하고 사과 및 정정기사를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 이에 최 교수는 또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인권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이동진(작고) 목사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동포들과 연대해 신문사를 항의 방문하고 한인사회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아울러 당시 소수민족 언론에도 다민족 사회 하와이에서 소수민족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기사를 쓴 언론사의 문제점을 알려 나갔다. 한인 언론사는 물론 소수민족 언론사들이 한 목소리를 내면서 강경하기만 했던 스타블리틴 편집국은 급기야 한인사회가 요구한 사과와 정정기사를 게재하며 사태가 수습되었다. 이후부터는 하와이 술집 관련 기사는 '코리안 바'가 아닌 '호스티스 바'로 언급되고 있다.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주민들이 더 많았던 70년대 현지 언론을 향해 소수민족의 권익을 주장하며 정정보도와 사과를 받아 낸 이 사건은 아직도 로컬 주민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하와이 한인사회를 향한 최 박사의 관심과 사랑은 '하와이 한인회 이사' '한인사회학교 이사 및 교장' 이력에서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한인 교수들이 한인사회 현안에는 무관심한데 반해 최영호 박사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민사회와 연계해 살아있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최 박사의 행동하는 양심의 힘의 근원은 바로 "열심히 성실하게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눈을 넓혀 인간으로서 남을 도우는 일에 주저하지 말고 무엇보다 약한자를 돕는 사람이 되라"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당부에 기인한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정작 최 박사는 자신의 뜻을 잇는 후배 교수를 양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한인사회 후배들을 위해서는 "상대와 내가 다름을 인정해야 대화가 가능하고 조정이 가능하다"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문제가 한인사회에 만연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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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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