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여론조작을 위해 대규모의 댓글부대를 운영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2009~2012년 민간인들로 구성된 대규모 사이버 외곽팀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작업을 벌였으며 특히 대선이 있었던 2012년 공작이 정점에 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작에 들어간 돈은 국정원 특수활동비였다. 국민들이 낸 혈세로 특정 정치세력을 위한 전위부대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윗선의 개입 여부 등 진상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의혹만으로도 국정원은 국민들 앞에 용서 받기 힘든 범죄를 저질렀다. 국정원의 존립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국기문란이자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시작된 적폐청산 작업을 통해 구악들이 하나 둘씩 파헤쳐지고 실상이 드러나자 적폐를 지탱해 주었던 세력들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당파적 논리로 국민 앞에 저지른 범죄를 두둔하려는 파렴치한 주장일 뿐이다. 상식과 이성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런 행태들 때문에 지난 10년에 대해 “퇴행의 시기였다”는 부정적 평가가 뒤따르는 것이다.
권력의 퇴행성을 드러내 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과 사의 경계가 없거나 흐릿하다는 점이다. 의식의 전근대성이다. 이명박 시절 국정원의 원훈((院訓)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었다. 그러나 원세훈은 이런 의무와 책임을 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인 힘을 사적인 충성을 위해 사용했다. ‘대통령과 권력을 향한 익명 댓글부대의 헌신’이 그의 신념이었던 것 같다.
국정원이 운영했던 댓글부대는 한때 3,500명에 달했다. 댓글부대를 점조직으로 운영했다지만 이런 대규모 공작을 은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대담성이 놀라울 뿐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정치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추악한 행위들은 결국 드러나게 돼 있다. 그럼에도 많은 권력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권력을 쥐게 되면 뇌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도파민 수치가 너무 높아지면 목표에만 집착하게 되면서 자칫 도덕적 판단이 무너진다. 국장원장 원세훈이 바로 그랬다. 물론 이런 변화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세력 전체가 집단적으로 비슷한 증세를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권력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마치 우리가 죽음을 망각하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듯이 권력 또한 종말에 대한 생각 자체를 회피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착각 속에 뻔히 드러날 악행과 국기문란 행위들을 저지르는 것이다.
타조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은 채 자신은 안전하게 몸을 숨겼다고 믿는다. 곧 드러나게 될 국기문란 행위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들키지 않을 것이라 믿는 권력의 자기기만은 타조의 이런 어리석음을 꼭 닮아있다.
이런 속성이 권력의 일탈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감독과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사건 정보기관 제어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연방의회에 의한 강력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정보기관들은 의회 정보위원회에 수시로 보고하고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도 이를 흉내 내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감독기능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권의 적폐를 파헤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전임 권력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감히 스스로에게 통제의 족쇄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또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은 타조 모습의 피규어를 만들어 권력기관들에 나눠준다면 로마 장군 개선식에서 노예가 장군에게 너무 우쭐대지 말라는 뜻으로 계속 속삭였던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문구처럼, 되풀이되는 어리석음을 수시로 상기시키는 리마인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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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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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타조가 적이 오면 땅에 머리 박는다는것은 잘못된 이야기라고 하네요.
이 글을 쓴 논설위원은 타조가 위험 하다고 생각할때 모래속에 머리를 박는다 했는데 논설위원 쯤 돼면 뭐가 사실이고 뭐가 myth 인지 알고 글을 써여 할지 알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타조가 모래나 땅속에 하루에 여러번 머리를 박는 이유는 그 속에 묻어논 자기의 알을 rotate 해주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