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고운 뒤뜰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모르는 이에게 걸려온 전화 화면을 바라본다.
필요한 전화번호를 전화기에 저장해두어 벨이 울림과 동시에 이름이 뜨면 다정하게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며 대화를 시작한다. 입력되지 않은 번호는 벨이 울려도 받지 않고 기다리면 필요한 경우 보이스 메일에 음성을 남겨놓기 때문에 보이스 피싱을 방지할 수도 있다.
1990년대 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 등 뒤에서 들린 누군가의 “여보세요” 라는 소리에 나를 부르는 줄 알고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겸연쩍어했던 기억이 난다.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버스 안에서 그 조그만 물건으로 옆 사람이 들리게끔 큰소리로 떠들어도 그것이 공중도덕에 폐가 된다는 생각보다는 신기함과 편리함을 부러워했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휴대전화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급속도로 진화된 이 얇은 요술 상자는 단축된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도구가 됐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데 사용되는 언어가 단축되거나 실종되어 기계문명이 만든 테크닉 속으로 속속 빨려 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수다가 길어지기도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문자보다 더 좋은 것은 그 속에서 한숨과 울음과 웃음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 해도 두 달 후면 지난해가 된다. 낙엽 진 가을 벤치에 앉아 잠깐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지친 목소리나 명쾌한 웃음소리를 들어보자. 상대방의 아픈 사연을 진지하게 들어주며 내 슬픔도 울먹이며 얘기할 가까운 벗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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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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