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서울 장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세배 받으셔요” “왕 할아버지 왕 할머니 만수무강하셔요!” 증손들의 깜직한 세배인사도 수회기로 전해왔다. 장조카도 어느새 70인생을 살아오며 아들손자들의 세배를 받았다고 했다.
설날은 새해의 첫날이요 한 가족이 모여 앉아 복 주신 신령님 은덕에 감응하며 대를 이어 뿌리내려 살게 하신 선조들의 보살핌을 감사하는 명절이다. 당연히 한 가족 한 가문이, 즐겁게 화평하게 떡국과 설음식 앞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행복을 나누며 아이들은 설빔과 세뱃돈에 즐거워 문중어른들에게 세배 다니는 정경이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이다.
기쁘고 즐거워해야 할 명절이 비단 설 뿐 아니라 단오, 추석 등 우리 고유의 큰 명절을 맞을 때 마다 내 마음은 명절기분에서 점점 더 반비례해진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 70년이 넘는다. 해방 다음해인 1946년 3월 13일 함흥학생사건(반공 의거)에 연루돼 부모형제 일가친척의 곁을 떠나 혈혈단신 38선을 월남하니 이것이 사랑하는 형들(형3명 누나1명)과 이별이며 오늘까지 생사를 알 수 없이 애달프게 그리울 뿐이다. 불행 중 1.4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L.S.T를 타고 어린 조카들과 형수님들만이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 명절은 이산가족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매년 명절이면 삼팔선 근처 망배단에서 실향민들이 휴전선 넘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로 망향의 한을 달랜다.
세월이 흘러 형수님들도 먼저 가시고 조카들도 장성하여 또 그들이 자식을 낳으니 내가 왕 할아버지가 됐다. 기약이 없지만 통일이 되는 날 손아래 식구들을 거느리고 고향에 돌아가야 할 몸이 어쩌다가 타국이민이 되고 어언 90고개에 서니 점점 희미해져가는 고향의 향수가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래도 설은 설인 같다. 아내는 깊이 켜켜이 접어두었던 내 한복 두루마기, 마고자, 조끼, 저고리, 바지 등을, 동정을 달고 다리며 부산하다. 회혼을 지낸 늙은이의 정성이 설을 맞게 한다. 또 설을 몇 번이나 맞으려는지? 아내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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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일맥서숙 숙사 애난데일,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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