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선수·자신 기록·패배보다 가장 두려운 게 감기
▶ 파티모임 안 가고… 아이와 접촉 않고… 소금물 가글…
지난 11일 핀란드의 라리 레토넨(왼쪽)과 캐나다의 그램 킬릭이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펼치고 있다. 레토넨은 감기에 안 걸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사진 Jeffrey Furticella/ NY Times]
동계올림픽 선수들의 가장 큰 적은 상대 선수들이 아니라 감기다. 평창에서 스키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올림픽 선수들. [사진 Doug Mills/ NY Times]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선수들은 모두 이 올림픽 출전을 위해 수년 동안 매일 자신과의 싸움에서, 또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을 뚫고 인간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달려왔다. 당연히 올림픽 경기에 나서는 순간까지 이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에 하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그 모든 노력과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올림픽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 선수도, 기록도, 패배도 아닌 감기. 그것도 독감이 아닌 보통 감기다.
핀란드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라리 레토넨은 올림픽 한달 전부터 두 아들을 킨더가튼에 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친구 생일파티에도 참석할 수 없고,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한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밖에서 감기를 옮아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제 주위 사람들은 집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는 우리 애들을 초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남의 집에 갈 때면 내가 꼭 문자나 전화로 다시 확인하죠”
아이들을 외부환경으로부터 통제하는 일은 올림픽 선수들이 취하는 수많은 건강유지 전략 중 일부일 뿐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은 개막 일주일 만에 194건의 노로바이러스(norovirus, 전염성 위장염 바이러스) 발생이 보고됐다. 구토와 설사, 복통의 증상이 있고 1~3일이면 회복되는 장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선수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리노바이러스(rhinovirus), 즉 감기다. 경기에서 싸우는 라이벌은 눈에 보이지만 감기 바이러스는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나 있으며, 결코 지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싸워서 이길 방법도 없다. 걸리면 무조건 앓아야 하니 어떻게든 안 걸리는 것이 최선이다.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하는 일은 사람을 노이로제에 걸리게 한다. 따라서 효과가 있다는 민간요법은 무엇이든 따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이애슬론 전 미국대표 선수였던 사라 스투드베이커-홀은 “매일 밤 소금물로 가글했다”고 비법을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간호사인데 그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말해주었다”는 그는 덕분에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고 전했다.
라트비아의 루지썰매 선수 아르터스 다르츠니엑스는 생마늘을 먹는다. 자기 팀메이트들도 다 함께 생마늘을 여러 쪽씩 먹고 있다는 그는 여자 친구도 괜찮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다들 방에서 냄새가 엄청 나죠. 하지만 면역에 좋다니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면역학 교수 제임스 게른은 올림픽 선수들이 감기에 안 걸리기 위해 실행하는 여러 민간요법들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게른 교수가 승인하는 방법은 기본에 충실한 것, 즉 잘 자고, 손을 잘 씻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또한 레토넨처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예방법도 그는 좋다고 보고 있다.
“리노바이러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퍼뜨리는 매개체가 바로 아이들”이라고 지적한 게른 교수는 “아이들은 비위생적이고 항상 어른이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집에 감기 걸린 두 살짜리 아이가 있다면 어른이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동계올림픽의 문제는 감기와 독감 시즌인 겨울에 열린다는 점이다. 여름에 열리는 올림픽보다 감염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평창 올림픽은 노로바이러스 발병이 시작되기 전부터 출전자들을 모두 세균혐오자로 만들었다.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모두들 가장 먼저 마다가스카르 페스트의 감염주의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만났고, 검역소를 거쳐야 했으며, 열 감지기를 통과하며 체온 측정을 받아야 했다.
또 짐을 찾기 위해 수하물 벨트로 가는 동안에는 녹음된 여성의 목소리로 ‘구토’(vomiting)를 언급하는 건강 관련 공지내용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사람들이 얼굴에 흰색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평범한 풍경이다. 게다가 적절하게 기침하는 법(팔꿈치에 대고 하라는)이라는 사인 판이 경기장에까지 사방 곳곳에 붙어있으니 세균과 병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리기 직전인 것이다.
올림픽 선수들은 안 그래도 경기하기 전까지 이런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다. 선수들이 전세계에서 날아오는데 이중에는 분명히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 함께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고, 대형 카페테리아에서 뷔페음식을 셀프 서브하여 식사하기 때문에 누구나 감염 위험에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핀란드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요하나 마틴탈로는 손에 장갑을 끼지 않으면 음식을 덜어서 담는 큰 스푼을 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감기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 마틴탈로는 그녀 자신이 올림픽이 시작되기 한주일 전에 감기에 걸렸고, 동료들과 격리되는 조치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방이 다섯 개인 아파트에서 4명의 팀메이트와 함께 있을 예정이었는데 나만 따로 아파트를 배정받았다”고 말하고 다들 내가 100% 감기가 나을 때까지 그들의 아파트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팀들이 전담 닥터를 두고 선수들이 여행의 후유증 없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1월 월드컵 경기를 위해 이탈리아까지 갔던 미국 바이애슬론 팀의 닥터 랜디 윌버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서도 세부적인 계획과 지침을 마련했다. 시차적응, 개인위생, 적절한 수면과 다이어트 등에 관한 것들이다.
별것 없어보이는 내용이지만 그런 계획과 지침 자체가 선수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미국 바이애슬론 협회의 맥스 코브 회장은 “이 방면에 경험이 많고, 수백명의 선수들의 건강을 챙겼던 의사가 내놓은 계획이라는 점만으로도 선수들은 안심하고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고 “바로 그게 감기예방 제1수칙인 스트레스 덜 받기”라고 강조했다.
스트레스가 적을수록 감기에 덜 걸리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중요하고도 힘든 것이, 감기 예방에 힘쓸 정도로만 적당히 걱정을 하되, 실제로 감기에 걸릴 만큼 많이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스토보드 선수 메간 티어니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비책으로 삼고 있다. 팀의 기자회견에서 티어니는 “이상한 얘기로 들릴지 몰라도 감기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하려고 애쓰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고 “아플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게 된다는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그녀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약 2주전 티어니는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바로 그 걱정대로 올림픽 직전에 진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다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감기 덕분에 마음을 놓게 됐어요. 이제 금방은 다시 걸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에요”
<
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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