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방문하는 양로원은 숱한 사연들을 간직한 병든 노인들이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유독 웃고만 다니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신발도 없이 양말만 신은 발로 이리저리 다니며 갓난 애기만한 인형을 소중한 듯 품에 안고 다닌다. 인형을 쓰다듬고 뽀뽀하고 뺨을 찔러보고 눈을 마주하며 귀여운 듯 마냥 웃는다. 누가 가까이 가면 ‘안 돼 내 딸이야’ 하며 빼앗길까 돌아선다.
언젠가 들었던 정신과 의사의 말씀이 떠올랐다. “치매 환자는 세 살 된 어린아이 지능이 되어 그 자신은 아주 행복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인형의 등을 토닥이며 잠재우며 두리번거리고는 기저귀를 찾기도 한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스쳐갔고, 태고 적부터 이어져 온 이 세상 어머니들의 한결 같은 희생이 보였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는 기본이고, 가난한 살림에 손발이 닳도록 일하면서 허리 한번 못 펴보고 마음 놓고 꿀잠 한번 못 자본 세월이었다. 자신의 몸과 뼈를 녹이며 키워 온 금쪽같은 자식들 차례차례 결혼 시키고 “이제 할 일 다 했구나” 싶어 정신 차리고 보면 남은 것은 등은 굽고 쭈그러진 몸의 백발이 된 두 늙은이만 덩그러니 더듬거리는 두 다리로 병원 문이 닳도록 오가는 황혼이다.
그 어려웠던 세월 감당하신 치매 할머니, 첫딸 낳아 품에 안고 설레고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살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오래오래 행복 하세요” 인사 올리니 “ 쉿, 애기 자고 있어”라고 말씀 하신다. 나는 옆에 있는 간병인과 의미 있는 미소를 주고받으며 조용히 양로원 문을 나섰다. 집으로 오는 길, 그날은 석양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김영자 /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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