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처음 내 집을 갖게 된 건 작은 아이가 중학교를 갈 무렵이었으니 벌써 16년 정도 되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넓은 마당에서 많은 집안 대소사를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사하면서 심었던 배나무는 제법 실한 열매를 선물했으며 심어져 있던 레몬 나무는 열매가 너무 많아 가지를 받쳐줘야 될 정도로 풍성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아이들은 모두 떠나가고 텅 빈 살림살이만 가득 남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두 아이들이 아깝다고 가져왔던 살림들과 결혼하면서 두고 간 것들, 우리가 살면서 얻어온 것, 필요해서 샀던 것들……이렇게 계속 두면 안 될 것 같아 남편과 함께 짐을 줄여 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좀 비우고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정리한다고 둘이 머리를 맞대면 서로 자기 것은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여보, 오래되고 잘 안 쓰는 그릇은 좀 버려. 필요하면 새 걸로 사자.” “아니, 이 나이에 뭘 새 걸 사요? 있는 것 쓰면 되지. 이 그릇은 미국에 처음 와서 누가 주신 그릇이라 안 되요.” 남편은 마음대로 하란다.
“여보, 밖에 안 쓰는 공구들 좀 다 버리면 안돼요? 이제 얼마나 집을 고치겠어요?” “한번을 써도 필요할 텐데…… 공구는 비싸잖아. 버렸다가 나중에 사려면 돈이지.” 그 말도 맞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놨다 결국 못 버린다.
이민 올 때보다 짐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얼마나 버리지 못하고 살았는지 요즘은 날마다 느끼고 산다. 이번엔 아이들에게 묻는다. “얘, 너 안 가져간 거 버려도 되지?” “엄마, 좀 가지고 계시면 안돼요? 다 추억이 담겨서 버리기는 아깝네. 나중에 집 넓어지면 가져갈게요.” 어쩜, 온 식구가 똑같다.
한 집에서 10여년을 살았다고 이렇게 버려야 할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사는데 하물며 몇십년 사는 인생 동안 얼마나 많은 버려야 할 것을 내 안에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내 고집, 욕심, 미움, 질투 등 원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내 안에 담고 산다. 사랑, 배려, 이해와 같이 선한 것들만 담고 살면 좋으련만. 정리하기로 맘먹었으니 버릴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담아야 할 것들만 담으면서 미련 없는 나그네 삶이 되게 해야겠다. ‘자, 무엇부터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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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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