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필 여성단원들 ‘바지 허용’ 드레스코드 추진
▶ 176년 포멀한 복장전통 곧 바뀔 듯
뉴욕 필하모닉은 아직도 여성 단원들에게 롱드레스나 롱스커트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케이틀린 오크스]
여성들은 오스카와 토니상 시상식에서도, 국빈 만찬에서도 바지를 입을 수 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에 나설 때도, 그리고 대통령에 출마할 때도 바지를 입을 수 있다. 미국의 거의 모든 직장에서 여성은 바지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모차르트와 차이코스키를 연주하기 위해 데이빗 게펜 홀 무대에 오른 뉴욕 필하모닉 여성단원들은 모두 바닥까지 내려오는 검은 드레스나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들이 준수해야할 규정 때문이었다: 미 전국 20대 오케스트라 중 뉴욕 필하모닉만이 유일하게 포멀 이브닝 콘서트에선 여성단원들의 바지 차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드레스코드 변경을 추진하는 여성 단원들은 어떤 복장으로 연주하든 콘서트가 ‘승화된 경험’을 계속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케이틀린 오크스]
이제 그 규정이 바뀔 수 있을 듯하다. 176년의 전통을 가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뉴욕 필하모닉이 조용히 드레스코드 현대화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상 제한이 불공평할 뿐 아니라 연주할 때도 방해가 된다는 여성 단원들의 압력에 굴복해 다른 주요 오케스트라들은 최근 몇 년 여성 연주자들의 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쪽으로 규정을 바꿨다.
뉴욕 필하모닉이 복장규정 변경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성 평등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오케스트라들이 새로운 젊은 청중들을 끌어들이려고 애쓰면서, 클래식 음악계의 일부 인사들은 구식의 포멀한 복장이 새 청중들에게 거리감을 주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뉴욕 필하모닉도, 여성들의 롱드레스 뿐 만이 아니라 남성단원들에겐 연미복과 흰 타이를 의무화한 드레스코드가 ‘상류사회의 시대’가 지나가 버린 지 오래인 요즘에 맞는 일인가를 재검토하고 있다.
“좀 이상해 보인다”고 3년 전 뉴욕 필하모닉에 입단한 31세의 호른 주자 릴래니 스테럿은 지적한다. 오케스트라 경영부서와 드레스코드 현대화에 대해 논의 중인 그는 “우린 빨리 규정이 바뀌기를 원한다. 단순히 바지 허용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연주 복장에 대한 폭넓은 정의를 내리기 원한다”고 말했다.
드레스코드 변경 추진은 옷맵시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 악기 연주는 신체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남녀 상관없이 많은 연주자들은 포멀한 복장에 제약을 느낀다. 1980년대 잉글리시 호른 주자 줄리 앤 지아코바시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드레스코드 혁명을 이룬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하던 중에 호른의 키 하나가 그녀의 치렁대는 스커트에 걸려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선언한 그녀는 남성단원들과 같은 연미복을 입고 무대에 섰다. 당시 그녀의 이 같은 연주 복장 변화는 일각에서 비난을 받았으나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드레스코드에 명예롭게 반영되어 있다. 이 오케스트라에선 블랙 드레스, 롱스커트, 혹은 팬츠수츠 중 선택하라는 옵션을 주고 있다. 거기에 더해 ‘연미복’을 입을 수도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 오케스트라에서 최근 여성들은 눈부시게 비약했다. 막 뒤에서의 연주를 통해 단원을 뽑는 블라인드 오디션이 시행된 이후로 여성단원은 급속히 늘어났다. 반 세기 전 뉴욕 필하모닉엔 풀타임 여성 단원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은 44명 여성과 50명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오케스트라들은 포멀 콘서트에서도 여성 단원들의 바지 차림을 허용하고 있지만 뉴욕 필하모닉은 낮 공연, 청소년 콘서트, 공원 등 야외 콘서트, 현대음악 앙상블 연주 등에서만 바지 차림을 허용하고 있다.
시즌의 핵심 연주회인 이브닝 예매 콘서트에선 여전히 롱드레스나 롱스커트를 입어야 한다.
필하모닉 회장인 데보라 보다는 지난 가을 연주자들이 드레스코드 업데이트를 제의해 “현재 좋은 대화를 진행 중”이라면서 편안하면서도 콘서트의 특별함을 유지시킬 수 있는 복장에 대한 합의가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콘서트의 포멀한 분위기를 아끼는 다소 보수적인 오래된 고정 청중들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도록 고심하고 있다는 것.
1970년대 연주복을 당시 유행한 넓은 칼라의 벨벳 재킷과 나팔바지로 바꾸었던 사례를 기억하는 보다회장은 “불과 1~2년 만에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1958년엔 당시 뮤직디렉터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보다 현대적인 네루 재킷으로 바꿨다 역시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몇 달 만에 포기했고 2016년엔 비엔나 필하모닉이 유명 디자이너들에 의해 제작된 새 연주복을 선 보였으나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연주복 변경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이번 달에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이 디자인한 새 연주복을 선보였다. 통풍이 잘 되는 하이텍 원단을 사용했는데 성공 여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엔 시애틀 심포니가 남성 연주복의 꼬리 제거를 허용했다.
가장 미래지향적으로 간주되는 LA필하모닉이 여성단원에게 블랙 팬츠 정장을 허용한 것도 지난해다. “오랫동안 로비한 결과였다”고 바이올린 주자 메레데스 스노우는 말했다. 바지 차림은 특히 첼로와 관악기 섹션의 여성 연주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그동안 치렁대는 긴 스커트가 연주에 자주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뉴욕 필하모닉에서 드레스코드 변경을 추진 중인 호른주자 스터렛은 복장 규정 변경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은 어떤 복장으로 연주하든 콘서트가 ‘승화된 경험’을 계속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입고 어떻게 보이는가가 오케스트라의 가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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