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부부는 결혼 31주년을 맞았다. 처음 몇 년은 무슨 대단한 날인 것처럼 챙기려 들고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했었는데 어느덧 삼십 여년을 살다 보니 그저 그날이 그날일 뿐 특별한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도 왠지 그냥 넘어가기 섭섭해서 가까운 곳에 등산이라도 함께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그늘 한 자락 없는 뙤약볕에 먼지만 날리는 좁은 길을 가자니 땀도 나고 힘이 들어 괜히 오자고 했나 은근 후회도 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길을 둘이 걷는데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신혼 때 고왔던 남편의 손이 거칠게 느껴졌다.
작곡을 전공한 남편은 곡을 쓰고 악기를 다루며 관현악단과 교회에서 지휘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와서 온갖 궂은일은 다하고 가족을 위해 애쓰다 보니 반백의 머리도 얼마 남지 않은, 병을 달고 사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젊었을 땐 남편보다 아이들에게 더 정성을 쏟았던 것 같고 그런 나를 남편은 늘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 내 전부를 주었던 아이들은 모두 떠나고 지금은 남편만 내 옆에 있었다.
거친 손이 그가 살아온 고단함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그동안 남편에게 소홀했음이 새삼 미안하게 느껴졌다. 비록 등산은 힘들었지만 잊고 있었던 남편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산행이 되어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영원한 VIP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더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하면서 멋진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양주옥 / 피아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