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8박 9일 침묵 피정에 다녀왔다.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싶어 멀리 시카고까지 가서 피정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어슴푸레 빛이 들어오면 이상스레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해가 떠오르기 전 피정 센터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숲 속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때서야 햇빛이 숲 사이로 퍼져 나왔다.
생전 처음 새벽 운동을 하고 나니 몇 년 동안 아침밥을 안 먹던 사람이 아침식사 시간이 기다려졌다. 내 몸의 근육들도 아침부터 운동을 하게 되어 놀랐겠지만, 내 안의 소화기관들도 아침부터 맞이하는 음식들로 놀랐을 것이다.
기도 중에 잠이 오면 잠깐의 단잠을 자기도 했다. 낮잠을 자고 나도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게으름을 폈다는 죄책감이 없었다.
첫날, 땅거미 질 무렵에 산책을 나갔다가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 발 앞에 반짝반짝 빛 가루를 뿌려주었기 때문이다. 축제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폭죽을 터트리는 것 같은 반딧불의 환영 팡파르였다.
9일 동안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잘 준비를 했다. 햇빛에 몸을 맡긴 채 살랑대는 나뭇잎도 바라보고,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세찬 빗줄기의 소리도 들었다.
세상에 다시 돌아와 그때 일을 되새김해 보니, 친정집에 가서 실컷 잠을 자고 온 기분이다. 세상 걱정 다 내려놓고, 힘든 관계 다 내려놓고, 오직 자연과 나, 내 안의 나만을 보고 느끼고 왔다. 세상 사느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들으며 회복되어 왔다.
쉰다는 것은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가 되어야 하는 거였다. 잠깐 날숨 뱉고 마는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 찍고 덮어야 쉬는 거였다. 그래야 재창조가 되는 거였다.
가끔 마침표 찍고 떠나면 좋겠다. 그래서 재창조되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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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 /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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