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연 김홍걸 단장이 평양에 가서 일본에 있는 강제징용자의 유해 송환을 남북이 같이 협조하기로 결의하고 왔다.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원혼들이다. 그 분들의 유해 송환을 추진한다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더구나 남북이 힘을 합쳐 그 일을 함께 한다니 더욱 의의가 깊다.
또 다른 뉴스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유골들이 북한에서 인도되어 오산 비행장으로 넘어왔다는 소식이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억울하게 죽어 아무 곳에나 흩어져 있었던 유골만이라도 그들 고향땅으로 돌아간다니 잘 된 일이다. 전쟁 종식의 의미로도 그리고 북미화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이렇게 살아생전에 미처 돌아가지 못했지만 죽어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땅에는 아직도 귀천을 떠도는 영혼의 유골들이 전국 곳곳에 산적해 있다.
그들은 바로 한국 전쟁당시 소위 보도연맹 관련자들로 사망자가 전국에 걸쳐 최소 20만 명이 넘는다. 거창, 경산 코발트 광산, 문경, 함양등 경상도에서 대규모 학살 사건 등이 일어났고 충청도에도 이런 학살 사건이 여러곳에서 있었다. 그 중 배방리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PD 수첩에서 다뤘는데 그 학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모면한 생존자가 이 곳 워싱턴 근교에 살고 있었다.
그는 그 학살에서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 10명을 잃고 60여년을 살아왔다. 그 동안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갖은 고생을 겪었고 미국에 와서 자수성가 했다. 그가 말한다. 1살짜리 아이가 빨갱이겠나? 밥짓고 빨래하는 부녀자들이 빨갱이겠나? 배방리 학살 발굴현장에선 발견된 비녀만도 90개가 넘고 아이들 장난감, 구슬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는 부모님의 유골을 찾지 못해 발굴현장의 시신들 뼈에 묻은 흙을 가지고 왔다. 그렇게라도 부모님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민간인을 재판 없이 죽이면 안된다. 그들이 설사 ‘빨갱이’라도 말이다. 올해로 한국 전쟁이 끝난지 65년, 이제 전쟁 참여자들의 종전선언과 더불어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서둘러 밝히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골들을 수습하여 그들의 영혼을 달래야한다. 진정한 화해란 어둠으로 진실을 덮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그것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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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근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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