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 운동회를 하던 날이 떠오른다. 모두가 모여 응원하는 소리, 웃음소리, 우렁찬 함성들로 마을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렇게 한바탕 행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행사의 즐거운 소음은 싹 걷혀버리고 공허한 흔적들만 남아 뒹굴던 모습, 운동장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가슴속에 스산한 바람이 돌아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원더우먼이었다. 당시 원더우먼 열풍은 대단했다. 평범해 보이는 그녀가 위기를 만나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변신을 한다. 빙글빙글 돌면 평범한 복장이 원더우먼의 특수복으로 변하고, 변신한 그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통쾌하던지 꽤 오랫동안 원더우먼 앓이를 했다.
내 나이 52세. 지난 20여년을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선교를 위해 적도의 태양과 붉은 흙냄새를 벗 삼아 청춘을 그곳에서 보냈다.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사느라 애쓴 지난 세월이 후회스럽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회가 끝난 후에 경험했던 것 같은 쓸쓸함의 흔적이 가슴속에 맴돌고 있는 것은 왜일까?
인생 이정표가 장소와 상황의 변화로 인해 잠시 자리매김을 못하는 듯 어지럽다. 위기에 처한 원더우먼처럼 나는 빙글빙글 돌며 변신을 시도해본다.
지금까지의 옷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후반기 인생 스토리를 써내려갈 준비를 한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작은 창 너머로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과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차 향기를 가운데 두고 인생을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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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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