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월남전에 4만 이상의 병력을 파견했다. 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는 우리국군이 대환영을 받았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어린 나도 용맹한 우리 국군이 틀림없이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자유 월남을 굳건히 지켜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월남은 1975년 ‘패망’하였다.
그런데 이런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나의 인식은 대학에서 리영희 선생의 ‘전화시대의 논리’를 일고 완전히 바뀌었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점령군 일본이 물러나면 독립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종전 후 프랑스군은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와서 베트남을 계속 식민지로 삼으려 했고 호치민을 지도자로 하는 베트남을 총궐기하여 프랑스와의 8년 전쟁 끝에 승리하여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는 듯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후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동기와 성격이야 어떻든 상대가 자본주의가 아니면 그것은 공산주의자로 없애버려야 한다”는 외교정책을 갖고 있던 미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결국 미국의 정책은 남베트남의 부패세력과 함께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호치민은 베트남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 지역을 통틀어 유일하게 존경받던 지도자였다. 이제 곧 호치민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하노이에서 역사적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이 70년 냉전의 마지막 조각인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이뤄내고 세계사의 대전환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되리라 기대해 본다.
<이덕근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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