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에 후추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앞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비탈진 곳에 위태로이 자리 잡고 서서 꽤 오랜 세월을 버틴 것 같다.
밑둥 아름드리는 굵고, 키는 지붕 위를 넘어선다. 잎이 떨어져 비가 오면 물길을 막아 버리기도 하여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뿌리는 또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지 그 위로 계단을 내면서 애를 먹었다. 몇년에 한번씩 가지치기를 해주어도 봄이면 어김없이 잎이 수양버들처럼 무심히 쑥쑥 자라난다. 그 잎들은 서로 부딪치며 출렁거리고 꽃을 피우고 빨간 열매도 맺는다. 그것이 후추가 된단다.
나는 이곳 캘리포니아에 와서 후추나무를 처음 보았다. 그 나무가 후추나무인지 알고 나서는 여기저기 공원에 무수히 서있는 후추나무를 많이 보게 된다. 어떤 날은 후추열매를 한줌 따서 향기를 맡아보기도 하는데 자연 그대로의 향기가 아주 좋다.
그러나 그것은 넓은 공원에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의 경우이고, 우리집 앞마당 비탈에 서있는 후추나무는 물길을 막고 그늘을 만들어 내가 심어놓은 꽃들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어떤 지인은 뿌리가 나중에는 집까지 상하게 한다고 이참에 아예 잘라 버리라고도 한다.
그러나 한 자리에서 오래 버텨온 세월을 내가 베어낼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그도 살아내느라 얼마나 많은 목마름의 시간과 비바람의 고통을 견디어왔을까. 견디기 힘들었을 바람을 이겨내고 상처받고 그 상처가 아물어 단단해지고 그 흔적이 굳은 껍질이 되어 이제 태풍에도 견딜 만큼 좀 살만해졌을지도 모르는데…
돌보지 않는 비탈길에 위태로이 자리잡아 더 안쓰럽고, 나처럼 눈으로만 즐기는 게으른 주인을 만나 견디어주는 것이 고마워 오늘도 자르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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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실 / 풀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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