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달 공들였는데 지인 통해 보험 가입, 계약서 사인하기 직전 말도 없이 잠수
▶ 밤낮도 없는 일상이지만 보상은 달콤, 문전박대 이겨내니 어느새 ‘흥정 고수’
영업맨들은 격언을 좋아한다.‘비관론자는 기회가 주어져도 어려운 이유를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회를 찾아낸다(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나‘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처럼 용기를 북돋는 격언을 끊임없이 되새기지 않으면 마치 비브라늄 같은 고객의‘방패’를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업맨을 경계하고 심지어 면박까지 주는 잠재고객들, 판매 직전까지 갔지만 연락이 끊기거나 다른 영업맨을 찾아가는 고객들을 감당하기 위한 정신적 훈련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세뇌하지 않으면 인간의 자존감에도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게다가 고객 중에는 영업맨에게 사적인 부탁을 계속하며 하인처럼 부리는 ‘진상’들도 있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노력 끝에 찾아오는 보상은 영업맨을 성공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전국에서 대형트럭을 가장 많이 팔기로 유명한 강병철 현대자동차 서부트럭지점 부장은 최근 상용차 판매대수가 2,000대를 돌파하며 네 번째로 ‘상용차 명인’에 이름을 올렸다.
강 부장은 햇병아리 영업사원 시절 하루에 1,500㎞씩 운전하며 고객들과 만났다. 서울에서 출발해 거제도·여수·대구 등을 반나절 만에 돌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서비스센터망이 잘돼 있지만 199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다”며 “새벽이라도 고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직접 찾아가 해결해줬다”고 말했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4,000대 넘게 팔아 승용차 부문의 영업 명인으로 꼽히는 김경보 현대자동차 제주광양지점 부장은 “자동차가 아닌 마음과 정성을 판다고 생각하며 영업한 것이 높은 재구매율의 비결”이라고 했다.
10년차 보험설계사인 E씨는 ‘초짜’ 시절 탕수육 한 접시 주문조차 고민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덧 베테랑 영업맨이 됐다. 그는 “9년간 주 6일을 일한 덕분에 얼마 전 연봉 1억원을 찍었다”며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 하지 말고 상품 구조와 설계, 화술과 협상의 기술 등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브로커에게 고객 말씀은 돈이에요.” 오직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여의도 증권가에 들어선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 ‘빽’도, ‘줄’도 없던 그는 수수료 수입 0원으로 해고 직전이다. 주문실수로 고객 돈까지 날린 그에게 고객은 신이고 고객의 말씀은 돈이다.
영화 ‘돈’의 한 장면이다. 영화를 본 A증권사 박모 팀장은 “요즘 저 정도는 아니지만…”이라면서도 쓴웃음을 짓는다. 영화에는 펀드매니저의 주문을 받아 그 수수료 수익에 따라 실적이 달라지는 증권사 영업팀 직원들의 애환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서는 펀드매니저에게 자녀 생일선물을 들고 찾아가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모습은 실적에 울고 웃는 영업맨의 모습이고 박 팀장의 과거와 현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술 접대, 골프 접대는 양호한 편”이라며 “세간에 나오는 갑을 관계로도 정리하기 힘든 게 영업맨과 고객 사이”라고 말했다.
영업직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중소제약사 영업직인 A씨. 봄·가을이면 주말 보내기가 괴로워진다. 날씨가 따듯해지면 VIP인 대형병원과 대형약국 관계자들과의 주말 골프라운딩 일정이 겨울·여름보다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 고객 ‘모시기’가 아주 고역이다. 전문의약품의 처방권한은 의사만 가진 만큼 제약사 영업맨들에게는 하늘이다.
도를 넘는 갑질을 해도 꾹 참을 수밖에 없다. A씨는 “어지간한 전문의약품들은 성분·가격·효능이 비슷비슷해 차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제약사 영업맨이 평일이며 주말이며 할 것 없이 스킨십으로 의사와 친분을 쌓고 눈도장을 찍어야 겨우 자기네 회사 약품을 선택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나마 몸만 고되면 다행인데 대놓고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의사·약사들도 상당하다”며 “정도가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불법·편법인 것을 알면서도 당장 영업실적을 펑크 내지 않으려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크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제약사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 대형 다국적제약사 영업간부인 B씨는 “일주일에 평균 두세 번은 아예 장례식장으로 출근하는 것 같다”며 “요즘은 상조업체에 장례를 위탁하는 상주들이 많아 과거보다 우리 영업맨들이 현장에서 서빙하고 조문객을 안내하는 노력봉사를 하는 경우가 줄었지만 과거에는 ‘상주 아닌 상주’처럼 일일이 고객 상가의 조문객을 모시고 식장을 정리하는 일까지 도와야 했다”고 말했다.
영업팀 직원들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수익구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보험영업의 경우 보험설계사들이 초회보험료를 기준으로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상품에 따라, 특정 보험사 소속인지 독립대리점(GS) 소속인지 등에 따라 수수료가 다르다. 적게는 수십%에서 1,000% 이상까지 차이가 나는 구조다. 보험사들이 전략적으로 미는 보험상품들의 경우 수백%의 특별수당이 별도로 지급돼 초회보험료의 2,000%가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사례도 생긴다.
중간에 가입자가 보험을 해지하면 보험설계사들은 일정 비율로 환급해야 한다. 설계사들이 고객들에게 헌신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다른 영업의 메카인 자동차회사 영업팀 직원들은 기본급이 없다. 차를 판매했을 때 발생하는 판매수당만 있다.
판매수당도 대리점 사장과 7대3 비율로 나누는 터라 영업팀 직원들은 자동차보험상품, 캐피털 상품 등을 통해 추가 수당을 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될수록 영업팀 직원들의 경쟁은 더욱 심해진다. 이전과 달리 전단·현수막 등의 홍보보다는 인터넷 광고나 온라인 커뮤니티, SNS, 유튜브 등을 통해 마케팅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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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박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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