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멋을 찾아 궁 나들이에 나섰다. 타국에서 한글을 간신히 익힌 딸, 손주, 조카들과 창덕궁을 방문했다. 여기가 무엇 하는 곳이에요? 묻는 아이들에게 창덕궁, 임금님의 Secret garden이라고 소개했다.
임금이 바람을 쐬고 산책하며 거닐었기에 비원(?苑), 궁원(宮苑), 금원(禁苑), 후원(後園)으로 불리며 쉼터 기능을 했음을 엿본다. 비밀스럽고 고요한 곳, 왕의 발길조차 조심스러웠던 숲속 궁궐이다. 이 정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고 바위, 연못, 정자 하나에도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창덕궁 정원에 그림같이 펼쳐진 부용정이 있다. 정조가 낚시를 즐긴 곳이기도 하다. 연못 안 둥그런 섬은 태양, 네모난 연못은 지구를 상징한다고 하니 정조의 과학적 소질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달은 하나이고 물은 백성으로 비유하여 그 위에 떠 있는 달은 하나이므로 물은 달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탕평책을 실행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그 곁에 자리 잡은 왕실 도서관은 규장각이다. 규장(奎章)은 임금이 쓴 글씨, 혹은 걸출한 문장이나 글씨를 가리킨다. 조선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 서화, 유교 등을 관리 및 보관하던 곳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각종 서적을 수집하고 편찬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수행했다. 훈민정음을 제정하는 산실이 되었던 집현전의 후속 기관이었다.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여 학문을 닦던 선비들의 정신이 담겨 있다. 정조의 탁월한 능력으로 문화 부흥을 이루었음을 볼 수 있다.
색을 칠하지 않아 초라하리 만치 순박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여기에서도 임금님이 살았어요? 손자가 물었다. 지붕 위에 자란 잡초 탓에 심상치 않아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안내서를 읽어보니 효명세자의 서재였다. 효명세자는 시 읊기를 좋아하고 재능이 많았다고 한다. 건물의 특이한 점은 뒤쪽으로 계단이 있고 거기에 문이 있다는 게다. 이는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규장각에 쉽게 닿도록 했다는 사실에 손자도 감탄했다. 책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옥류천이 흐르는 연못 위에 숨겨진 작은 정자 ‘애련정’엔 연꽃처럼 맑고 고요한 사랑의 기억이 숨겨져 있다. 정자에서 국정을 고심했을 임금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깊은 물그림자에 역사가 묵묵히 녹아 흘렀다. 우리는 정자를 바라보지만, 임금은 정자에 앉아 연못 물에 비치는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고 하니 사려 깊은 선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백 종 나무들이 400년 이상 세월을 견디며 궁을 지켜준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나무는 속이 비어 받침대에 의지한 채 서 있는 게 아닌가. 소나무 굽은 길 따라 흐르는 바람 속에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역사의 파문, 왕의 고독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기에 흙과 나무, 돌이 예사롭지 않다.
외침에 의해 불타고 소실된 궁의 일부 모습에 아쉬웠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후 광화문 너머로 근정전 지붕이 드러났다. 복원된 경복궁 앞 광화문 대로를 거닐며 우리 숨길 역시 시원하게 트이는 듯했다. 고궁을 통해 모국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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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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