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 독일 슈투트가르트 종신단원 포기하고 한국 돌아와 국립발레단 감독 취임

강 감독은“어느 자리에 있든 발레를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사진=이호재 기자>
지난 2016년 7월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극장. 매력적이지만 오만방자한 오네긴이 시골 여인 타티아나의 구애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6년의 세월이 흘러 타티아나는 품위 넘치는 공작부인이자 사교계의 여왕으로 성장했다. 오네긴은 뒤늦게 남편이 있는 타티아나를 찾아가 편지를 전하며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애걸한다. 첫사랑의 때늦은 고백에 마음이 흔들린 것도 잠시, 타티아나는 미련없이 오네긴의 편지를 찢어버린다.
이날 공연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52)의 은퇴 무대였다. 강수진은 은퇴작 ‘오네긴’에서 발레리나로 가장 깊은 애정을 쏟은 캐릭터인 타티아나를 연기했다. 타티아나가 편지를 찢고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순간, 강수진도 자신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긴 ‘무대’와 작별했다. 한국 나이로 50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지 꼭 30년이 되던 해였다.
은퇴 공연 2년 전인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단장을 맡고 있는 강수진은 발레리나로서 늘 최고의 길만 걸어왔다. 그는 1999년 한국인 최초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거머쥐었다. 2007년에는 아시아인 가운데 처음으로 독일 최고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카머텐체린 작위’를 받았다.
그런 그가 평생 신분이 보장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종신단원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모국의 후배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어느덧 6년째 국립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강 감독을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의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가끔은 무대의 희열이 생각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후회 없이 살아왔기에 전혀 그립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은퇴 무대에서 벅찬 감격을 느끼던 순간에도 연기가 아닌 다른 일로 관객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똑 부러지게 답했다.
강 감독이 1시간30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인내심’이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단어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커다란 울림을 품고 있었다.
강 감독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9시간씩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인생 자체가 결국은 복습과 예습의 반복”이라며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은 뒤 오른 무대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으면 항상 제자리를 맴돌 뿐이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고 돌이켰다.
강 감독이 토슈즈를 벗고 예술행정가로 ‘인생 2막’을 열기로 한 것 역시 배짱 가득한 도전정신 없이는 선뜻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그는 “무용수로 활동할 때는 그저 혼자서 집중력을 발휘하면 됐지만 100명이 넘는 단체를 이끌고 모든 행정 업무의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예술감독의 생활은 또 다른 책임감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정신없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은 영원한 동반자인 남편 툰치 쇠크멘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함께 무용수로 활약하며 인연을 맺은 터키 출신의 남편은 한동안 국립발레단의 객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강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연인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남편은 ‘인생의 반려자’ 그 이상”이라며 “남편이 없었다면 오늘의 ‘강수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국립발레단 수장으로서 강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발레 대중화’와 ‘안무가 양성을 통한 창작발레 활성화’다. 두 가지 모두 강 감독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인내심이 없으면 결코 달성하기 힘든 목표다. 우선 강 감독은 2014년 취임하자마자 발레의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장르를 무대에 올리는 실험부터 했다.
취임 첫해 네오클래식 발레인 ‘교향곡 7번’과 모던 발레인 ‘봄의 제전’을 동시에 선보였다. 2015년에는 세계적 안무가인 존 크랭코의 드라마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국내 발레단 중 최초로 공연하기도 했다. ‘빵과 소시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발레가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는 소신에서 비롯된 레퍼토리 선정이었다. 강 감독은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수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발레를 친숙하게 여기는 관객이 많아졌다”며 “예전에는 ‘발레’라고 하면 ‘빨래?’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골수 팬부터 취미로 발레를 즐기는 분까지 관객층이 다양해진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실력 있는 안무가를 발굴해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작품을 늘리는 것도 강 감독이 임기 동안 완수하고 싶어하는 숙원사업이다.
강 감독은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고 지레 겁을 먹고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렇잖아도 역사가 짧은 국립발레단이 세계 유수의 발레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며 “자신만의 것이 없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달 17~18일 전남 여수에서 초연을 마친 ‘호이 랑’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창작 드라마 발레인 ‘호이 랑’은 조선시대 하층민의 전기를 모아 놓은 장지연의 열전 ‘일사유사’에 등장하는 효녀 부랑 이야기에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오는 31일과 6월1일 울산에서도 공연한 뒤 11월6~10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2017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연임에 성공한 뒤 현재 임기를 8개월 정도 남겨놓은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한 강 감독은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아쉬울 뿐”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좋은 단원들과 함께 작업하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그저 감사한 마음”이라며 “어느 자리에 있든 발레를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She is...
▲1967년 서울 ▲1985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1985년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 입상 ▲1986~201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1990년 대한민국 대통령상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 ▲2006년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 심사위원 ▲2014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공로훈장 ▲2014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 ▲2016년 숙명여대 명예 무용학 박사 ▲2017년 제7회 대한민국 한류대상 순수문화공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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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한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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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의 꿈을 잘 펼치시길 바라지만...서울시향 꼴이 나지 않기만을. 문화차이로 인해 사람들과 시스템 조직 단체의 텃세로 고생 좀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