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거동이 불편해진 엄마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한국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얼마 전 통화할 때만 해도 건강이 회복되는 것 같아 내심 기뻤는데, 잠시지만 동생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치매인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등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건네곤 했었는데 막상 엄마가 치매라는 말에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미국에 살다 보니 1년에 고작 한번씩 찾아 뵙던 엄마인데, 그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은 너무도 서글프고 괴로웠다. 며칠 후 다행히도 검사 결과, 최근에 드신 약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인 치매 현상이라고 해서 겨우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요즘 기력이 없어서인지 부쩍 많이 힘들어 하신다.
치매는 인지 기능의 손상과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병으로 주로 85세 이상에서 알츠하이머로 많이 나타난다. 외롭고 고독하게 만드는 잔인한 병인 동시에 가족들도 힘들게 하는 병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읽은 치매에 관한 책, ‘뇌美인’을 다시 펼쳐보았다. 뇌를 웃게 하고 치매를 예방하는 실천 방법 6가지도 새롭고, 이미 중증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남을 배려하고 웃음을 잃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힘들지 않게 하는 ‘예쁜 치매’라는 단어도 다시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실버타운이라 불러도 될 만큼 이웃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그중 최고령은 옆집의 백인 부부인 빌(93)과 크리스(90)이다. 50년 전 40대였던 빌은 뉴욕에서 산호세로 여행을 왔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이사를 했다. 빌은 캘리포니아로 이사오던 해에 뉴욕에서는 어른 키 높이 만큼 눈이 왔다는 똑같은 얘기를 만날 때마다 반복했다. 빌은 가족 이외에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빌과 우리 가족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주인공처럼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를 하지만 빌은 따뜻한 배려를 가진 예쁜 치매이다. 빌의 집에는 작고 낡은 흔들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 의자는 빌 엄마의 유품인데, 그의 흐릿한 기억 속에도 엄마는 따뜻하고 고마운 존재로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을 얘기하는 빌의 얼굴에서 장난꾸러기 어린 소년이 보여 가슴 뭉클했다. 오늘도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하며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에 속상하지만, 함께 대화하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 우리에게 남았음을 위로 삼아 본다.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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