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학교 성적 때문에 엄마에게 한 소리 들은 어느 날 저녁, 밥상 위에 웬일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왕갈비가 쌓여있다. 잔칫날에나 볼 수 있던 귀한 왕갈비가 웬일일까, 좋으면서도 아까 혼났던 일 때문에 쉽게 젓가락이 가지 않는 아들이 슬쩍 엄마를 올려보며 묻는다.
“이거 나 먹어도 돼?” 그러자 아들은 보지도 않고 맞은편에 털썩 앉은 엄마가 툭 던지는 말.
“그럼 이걸 나더러 다 먹으라구?” 아, 먹으라는 말이구나. 기쁘게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아들 마음은 왠지 찝찝하다. 내가 언제 엄마더러 혼자 다 먹으라고 했나.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어느새 엄마에게 왕갈비 한 접시를 혼자 다 먹으라고 한 불효자(?)가 되어 있다. 그냥 “응, 많이 먹어, 우리 아들” 해주면 안 되나.
젊은이들 사이에 한참 유행하던 시크한 연인의 말투가 있다. 며칠 밤을 고민하며 준비한 선물을 건넬 때도 “오다 주웠다. 너 가져라” 한 마디만 툭 던진다. 그럼 듣는 사람은 “오마나, 머 이런 걸 주워왔어”하며 기쁘게 받아야 한다. 안다. 상대에게 가장 귀하고 좋은 말만 들려주고 싶은데 그게 오히려 부담되고 손발 오그라 들까봐 일부러 던지듯 귀하지 않은 말투로 내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제발 알아먹어줘.
아니, 모른다. 쑥스러움으로 가장하고 의뭉스럽게 얼굴을 찌푸린 채 ‘왜 못 알아먹어!’ 라고 소리치는 너의 진심, 못 알아듣겠다. 더군다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툭 내뱉은 말에 마음까지 상할 때는 꼭 내가 열등생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감정을 실어서 하는 말이 감정 없이 툭 내뱉는 말보다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감정을 실어서 말하려면 우선 가만히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 또한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진심을 드러내면 거절당할까 두려운 내 마음에 갑옷을 입히고, 진심을 말하느니 ‘오다 줍는’ 쪽을 택한다.
이왕 밤잠 설쳐가며 준비한 선물이라면 포장도 곱게 해서 받고 싶다. “널 위해 준비했어”라는 수줍은 말과 함께. 입이 안 떨어지걸랑 “이거..” 하고 뒷머리만 벅벅 긁어도 좋겠다.
분홍분홍 말랑말랑 전하고 싶은 진심이 있거든 비겁하게 거친 말로 포장하지 말고 알록달록 포장지에 싸서 조심스레 건네주자. 해사한 너의 진심이 우리의 날을 밝힐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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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상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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