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아아아아”
“만세! 만세!”
갓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유사(有司) 열일곱 분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7월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한국의 서원(書院) 아홉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던 순간, 참석자들 눈길이 모두 한국에서 온 유림(儒林) 대표에게 쏠렸다.
옷차림이 특이하기도 했지만 절제된 태도가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자국의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 대부분의 나라 대표단이 국기를 펴들고 떠들썩하게 자축하는 모습을 보인 데 반해 한국 유림들은 공수(拱手)·배흥(拜興)·평신(平身)의 순서대로 감사 인사를 한 뒤 조용히 회의장을 떠났다. 서원이 지켜온 정신이 무엇인지를 단 몇 초 만에 세계인에게 각인시킨 셈이다.
귀국한 지 두어 달이 지났는데도 그때를 떠올리면 뿌듯한 자부심이 솟는다. 도학(道學)과 예학(禮學)의 정수를 절제된 몸짓으로 표현해 소통한 그 방식이야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요구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아닐까 싶다.
등재된 아홉 곳 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광역지자체 여섯 곳, 기초지자체 여덟 곳은 영호남과 충남에 고루 퍼져 있다. 지역을 넘나드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각별하다.
지난해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남북 공동 등재됐을 때 관계자들을 초청했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7월30일 서울시 삼청동 서울공관에 김인수 서원협의회장을 비롯해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외교부·문화재청의 전문가 20여명을 초대해 오찬을 베풀며 노고를 치하했다.
한국의 산지승원 일곱 곳과 서원 아홉 곳이 해를 이어 세계유산이 됐으니 불교와 유교의 문화재가 이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될 것이라는 덕담이 오갔다.
이 총리는 올여름 서원 몇 곳을 둘러볼 계획이었는데 급박해진 한일 외교 문제 탓에 휴가를 못 가게 돼 아쉽다며 후일을 기약했다. 평소에도 주말이면 각 지역의 문화유산 현장을 찾고 특히 서원 탐방을 즐기는 총리의 애호를 아는 까닭에 여쭸다.
“왜 서원을 더 좋아하시는지요.” 답은 명쾌했다. “고즈넉하기 때문이지요.”
서원은 다른 문화재에 비해 덜 알려졌기에 방문객이 적다. 더 꾸미지 않았기에 원형 그대로 가치가 많다. 이 총리는 이 두 가지를 들며 서원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 세계유산이 됐다고 해서 섣불리 시설을 갖추려 들기보다는 되도록 훼손하지 말고 고요하고 다소곳한 본디 모습을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러오는 것은 서원의 건물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혼과 내용일 것이다. 관행적인 과도한 보수정비보다는 서원이 올곧게 지켜온 정신의 세계적 전파를 문화재청은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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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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