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유독 한 글자로 된 아름다운 단어가 많다. 빛, 별, 꽃, 숨, 비…. 몸을 이루는 중요 부위인 눈·코·입·귀와 손·발도 그렇다. 멋과 맛은 또 어떤가. 국어사전을 펴고 마음을 흔드는 한 단어를 찾는 것도 흥미로운 여행이라 할 수 있다.
한 글자 단어에 생각이 모인 까닭은 9일 한글날 강원도 대관령 일대에서 열린 ‘올림픽 아리바우길 걷기 축제’ 때문이다.
‘아리’는 정선아리랑의 고장 정선을 의미하고 ‘바우’는 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아리바우길’이 태어났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름에 내건 국내 유일 ‘걷기 여행길(트레일)’은 모두 9개 코스로 전체 길이는 131.7㎞에 이른다.
걷기 축제 참가자는 현장 경비 일체를 내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길을 걸으며 강원도 땅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조건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올림픽 아리바우길 걷기 축제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를 적어 보내 선발돼야 하는 것이다.
9월25일부터 닷새씩 3주에 걸쳐 이뤄진 이 축제에 참가한 연인원은 200여명이 넘는데 그 사연 또한 구구절절했다고 한다. ‘길’이라는 한 글자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문화재청도 우리 옛길에 대한 관심이 높은지라 행사에 초대받아 참가자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벌였다.
개청 20돌을 맞아 6월 발표한 ‘미래비전 6대 핵심전략’에 이미 옛길에 대한 계획을 세웠던 터라 큰 도움이 됐다.
우리 청은 권역별 또는 주제별로 나눈 20개의 유·무형, 천연기념물, 명승을 아우르는 ‘케리티지 루트(Keritage Route)’를 개발해 관광자원화 할 예정이다.
한국을 이르는 Korea의 ‘K’와 문화유산의 영어 ‘heritage’를 합성한 명칭인데, 광역형 문화유산 길을 내는 것으로 내년 ‘2020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이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단 하루였지만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새삼 ‘길’의 위대함을 반추하게 됐다. 아리바우길에는 요즘 전국에 산재한 여러 둘레길과 차별화될 만한 원형의 정신이 당당하게 살아 있었다. 걷는 이들이 길을 잃거나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 손을 대 옛길 보존이 철저했다.
바닥은 흙길 그대로 두고, 보호설치물도 최소화했다.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길을 걷고 있노라면 수백년 전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두런거림이 들려온다.
등짐을 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갔던 보부상, 어린 율곡을 데리고 어머니를 그리며 고개를 넘었을 신사임당, 대관령의 절경에 취해 그림을 남긴 김홍도가 바로 옆에서 어울려 걷고 있는 듯하다.
한글날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이해인 수녀의 시 ‘길 위에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오늘 하루/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없어서는 아니 될/하나의 길이 된다…빛을 그리워하는 나/어두울수록 눈물날수록/나는 더 걸음을 빨리한다.”
<
정재숙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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