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쯤 전 골프 멤버들과 자주 골프여행을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남편의 식사가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해결책이 곰탕이었다. 푹 끓여두면 며칠 식사걱정을 덜 수 있었다.
요즘은 남편이 식당에서 사오는 곰탕을 먹고 있다. 매일 식당에 가서 곰탕이며 도가니탕을 사오는 걸 남편은 상당히 쑥스러워한다. 그런 남편을 기어이 등 떠밀며 곰탕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난 노동절 연휴 킹스 캐년에 갔다가 발을 약간 접질렸다. 조금 아프더니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으니 가는 뼈 하나가 부러졌단다. 당장 깁스를 하고, 그날로 창살 없는 감옥생활이 시작되었다. ‘고난의 날’이 시작된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남자 중의 남자’, 평생 부엌에서 설거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전기밥솥 버튼도 눌러본 적 없는 남편이 지금 우리집 주방장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 코치를 해가며, 그 밥을 얻어먹자니, 그냥 안 먹고 살았으면 싶을 때가 많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도움의 손길들이 뻗어져왔다. 깁스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그 날의 끼니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주곤 했다. 친구들과 이웃들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던 중 며칠 전에는 더욱 뜻밖의 일이 있었다.
은퇴 후 남편은 매일 아침 운동을 하러 간다. 그곳에서 골프 연습도 같이 하고, 커피도 같이 마시는 멤버들이 생겼다. 캄캄한 이른 새벽에 매일 아침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룹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로 통성명도 없이 그냥 어울려서 한시간 정도 같이 지내고는 헤어지는 그런 만남이다.
며칠 전 그날도 아침 운동 후 다들 헤어지는데 갑자기 한 분이 남편을 붙잡았다고 한다. 그러더니 자기 차에서 커다란 박스 하나를 힘겹게 들고 나와 남편 차에 실어주며 “도가니탕입니다, 이틀 동안 큰솥에서 푹 고아서 하루는 냉장고에 넣어 기름을 완전히 걷어낸 것입니다. ‘보약이다’ 하고 잡수시게 하십시오.” 하더라는 것이다.
그날따라 남편이 문 앞에서부터 “여보!” 하고 부르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당신이 좋아하는 도가니탕 가져 왔어”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스를 열어보니 보통 정성스럽게 만든 탕이 아니었다. 고기는 적당한 크기로 썰고, 한끼 한끼 먹기 좋게 깔끔한 통에 담아 보내 주었다.
“누가 보낸 거예요?” 물으니 남편은 그분 성함도 모른다고 했다.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그냥 만나면 반가운 분이라고 했다,
그분도 감사하지만 그 많은 양의 도가니탕을 정성스럽게 끓인 분은 그 부인이 아닐 것인가. 이름도, 성도 모르고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분의 정성이 내 마음을 행복하게 적셔주었다.
뜻하지 않은 골절로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많은 이웃들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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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오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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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