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 어디에서든 유칼리 냄새만 맡으면 잃어버린 아드로게 지역을 떠올릴 수 있다. 오늘날 그곳은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향기가 기억을 찾아가는 길목임을 잘 그려냈다. 유칼리나무의 본래 명칭은 유칼립투스(Eucalyptus)다.
원산지는 호주인데 지금은 아프리카·남미 등 따뜻한 나라 여러 곳에 퍼져 있다. 유칼립투스는 그리스어 ‘아름답게(eu)’와 ‘덮인다(kalypto)’의 합성어다.
꽃이 피기 전 꽃받침이 꽃의 내부를 완전히 둘러싸는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사람들은 잎에서 향기가 나는 이 나무에서 유칼리유를 채취해 피부 치료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약으로 쓴다.
호주 시드니에서 가까운 산자락을 찾으면 유칼리나무들에서 증발된 유액이 햇빛에 반사돼 산과 하늘이 푸른 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블루마운틴이라고 부른다.
온순한 성격과 귀여운 생김새로 호주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인 코알라(koala)는 유칼리나무의 잎만 먹고 산다. 유칼립투스의 종은 700여개인데 코알라는 이 가운데서도 수십개의 종만 먹고 나머지는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유칼리 잎에는 독성분이 있는데 영양가는 별로 없다. 코알라가 하루에 보통 20시간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먹거나 가만히 앉아서 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유칼리나무에 코알라가 앉아 있는 풍경은 호주의 상징이 됐다.
최근 호주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유칼리나무와 코알라가 수난을 겪고 있다.
서울의 약 100배에 달하는 면적에 산불이 번져 코알라의 서식지인 유칼립투스 숲의 80%가 훼손됐다. 지난해 약 33만마리였던 코알라는 이번 화재로 멸종 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많은 동물 중 코알라 피해가 가장 큰 것은 움직임이 느리고 이동을 싫어하는 습성 때문이다. 인화성이 높은 유칼리는 오랜 세월 큰 화재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요즘은 인간의 자연 훼손까지 겹치는 바람에 생존의 기로에 있다. 이번 고비를 잘 넘겨 유칼리와 코알라의 냄새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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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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