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전인 지난해 2월9일 독일 베를린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요새를 연상하게 하는 건물의 개관식이 열렸다. 말이 개관식이지 행사는 한 구석의 브리핑룸에서만 조촐하게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소지한 스마트폰·노트북 컴퓨터 등 인터넷 접속 수단은 모두 수거됐고 취재진에게도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 건물은 독일 해외 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Bundesnachrichtendienst)의 새 본부 청사였다. 청사는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여러 개의 직사각형 건물들을 가로세로로 이은 복합단지로 면적이 축구장 36개 크기인 26만㎡에 달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중앙정보국(CIA) 본부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규모 정보기관 건물이다. 첨단통신 장비는 기본이고 1만4,000개의 창문과 1만2,000개의 문이 있어 요새를 방불하게 한다.
평소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개관식에서 “해외 첩보 당국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메르켈이 자랑스러워하는 BND는 미국 CIA, 영국 MI6와 같이 해외 스파이 활동을 담당하는 기구다. 독일 총리 직속으로 직원만 6,500명에 달한다.
역사는 냉전이 한창인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서독 정부가 미국 정보기관들과 협력관계였던 비밀첩보대 ‘켈렌 조직’을 모체로 창설했다. 미국 지원을 받은 만큼 동구권 정보를 공유하는 등 서방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독일 통일과 냉전 해체 이후 미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미국 유력 정치인을 도·감청까지 했다. 2012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간의 통화, 2013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위성전화 통화를 도청한 게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BND가 CIA와 ‘케미’를 발휘하던 당시 동맹국에서조차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빼내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1일 보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암호장비를 팔아온 스위스 크립토사를 사실상 공동 소유한 두 정보기관이 프로그램을 조작해 이란·리비아는 물론 한국·일본 등 120여개국의 기밀정보를 수십 년간 털어왔다는 것이다. 첩보의 세계에는 적도 아군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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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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