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장진필 씨가 작고하셨다. COVID-19 바이러스 대란 중에 작별의 인사도 못 드린다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쉬움과 이별의 슬픔 속에 그 분과 함께 믿음생활을 같이한 지난날들을 회상하여 본다.
고 장진필 씨는 인간이기 전에 참되고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에 우선하였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 많은 분이었다.
와싱톤중앙장로교회가 아직은 요람기에 있을 때 몇몇 신도들이 작당하여 L 목사를 퇴출시키려는 모임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진필 씨는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 주동자와 직접 맞상대해 험악한 분위기까지 이른 상태에서 그들을 설득하여 교회의 분열을 막은 일화가 있다.
그릇이 컸던 그의 몸에선 항상 아량과 관용의 향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 하였으며 교회 직분엔 무관심하여 진즉 장로의 직분 하나쯤 받았을 법한 그였지만 집사에 만족하던 풀뿌리 평신도로 믿음의 정도를 달려온 장진필 씨이었다.
그가 있는 곳엔 항상 믿음의 형제들이 모여들어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였다. 대단한 스포츠광이었던 그는 골프나 축구게임의 해설자로도 유명했고 워싱턴의 우리 이민사를 꿰뚫어 기억하고 있던 살아있는 히스토리언이기도 했다. 장진필 씨는 올드타이머로 워싱턴사회에서 존경 받던 원로중의 한 사람이었다.
1963년 그는 청운의 뜻을 품고 피츠버그대학으로 유학을 왔었다. 1년 코스를 마친 그는 워싱턴으로 이주, 커리어를 바꾸고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하여 순탄가로를 달리던 중 간암의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부인 우정희 권사의 지극 정성의 간병에 힘입고 자신의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코로나 바이러스 외출 제한령 지시가 내리던 바로 전날까지 교회에 출석하여 흔들림 없는 믿음 생활을 이어나가다 78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2020년 6월 23일 장진필 집사는 ‘줌 장례식’이란 형식으로 그가 평생 몸 담아온 와싱톤중앙장로교회의 담임 목사인 류응렬 목사의 집례로 조용한 영결식을 가졌다. 삼가 주의 이름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아듀! 장진필 집사. 천국에서 만납시다.
<변만식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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