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왔다. 작년 1월1일에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리라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올해에는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올 한 해도 코로나 19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난 한 해 심한 고통과 상실감 속에 지났다 하더라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의 해이다.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 신(辛)과 소에 해당하는 지지(支地) 축(丑)이 만난 상서로운 흰소 띠다. 원래 소의 조상은 들소인데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길들여졌으며 대개 기원전 3,000년 정도, 한국은 기원전 2,000년대부터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으로 유추된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의 전신인 부여에서 전쟁이 있을 때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오며 이성계의 조상인 이안사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때 소 100마리 대신 흰소를 잡아 고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나온다.
농경문화의 중심인 소는 그 자체가 재산으로 노동력이자 운송수단이었다. 충청도 일부지역에서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부정 타지 말라고 사람처럼 대문에 금줄을 치기도 했고 어미 소가 해산했을 때는 쇠죽에다 미역국을 말아주기도 했다. 소는 가축이라기보다 가족처럼 여겨졌음이다.
‘소 팔아 대학 보냈다’는 말이 있듯이 한때 대학을 우골탑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소는 목돈 마련뿐 아니라 온 몸을 아낌없이 다 주어 식재료이자 공예품으로 이용된다, 그 중 코로나 시대에 소가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자.
백신의 시작은 소이다. 지석영은 제너가 창안한 천연두 예방을 위해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우두법을 처음 도입, 한국민에게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다. 소의 도움이었다.
또한 소는 풍요와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뉴요커라면 로어 맨하탄 월스트릿 볼링그린 팍에 있는 청동으로 된 거대한 황소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좁은 도로 사이의 인도에 서있는 이 황소와 기념촬영 하려는 관광객으로 늘 도로가 꽉 막혔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우습게도 양쪽의 뿔이 힘차게 솟아있는 정면보다는 소의 후면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재물이 더 들어온다고 믿는 이가 많았다. 꼬리가 등위로 바짝 치켜 올라가 엉덩이와 고환이 적나라한 뒷모습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나란히 서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또 뿔과 고환을 만지면 재물과 행운이 찾아온다며 관광객들이 20~30분씩 줄을 서서 너도나도 주요부위를 만지며 사진을 찍다보니 그곳만 하얗게 빛이 난다.
주식 시장의 회복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1987년 세워진 이 돌진하는 황소상은 받침대도 울타리도 없어 누구나 가까이 가며 만질 수도 있다. 소는 이렇게 풍요와 부, 자애, 여유, 근면성실, 좋은 표현은 다 해당된다.
올해는 흰소 띠 해, 신성한 흰색,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 입은 백의민족, 바로 우리 한민족이 아닌가. 한민족이 중심이 되는 2021년이다. 소의 흰색은 염색체 이상인 알비뇨 현상이라지만 워낙 지난 한 해가 험했던 탓에 이런 낭설도 믿고 싶다.
한편 소띠는 그 운에 따라 희우, 비우, 소우 타입으로 나뉘는데 희우(犧牛)는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제품으로 극최상급 소를 말한다. 희우형은 신분이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재물 복이 좋아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편이라 한다. 모쪼록 듬직한 믿음과 편안함, 슬기롭고 착한 소의 기운이 2021년 온 누리에 퍼지기 바란다.
“인생은 오늘 나한테 있고 세상의 유일한 기쁨은 시작하는 것”,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는 말이 있고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행복 하라는 한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말도 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그래도, 새해,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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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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