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플 & 비즈니스 - 리웨이 펀딩 브라이언 주 대표
▶ 코로나 속 주택시장 호황 수익 늘어 “낮은금리 중요하지만 크레딧 관리부터”
“차압위기 한인들 위해 최선 다해 지원”

리웨이 펀딩 브라이언 주 대표 사무실 책상에는 언제나 고객들의 융자서류 파일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바빠도 고객마다 컴퓨터 자료와 융자서류를 직접 꼼꼼하게 확인하며 고객별 융자 진행을 확인한다. [박상혁 기자]
리웨이 펀딩 브라이언 주 대표는 융자업계서 일한지 올해 30년이 된다.
융자업계 마라토너다. 실제로 LA마라톤 8번을 포함해 30여년간 크고 작은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주 대표는 그 동안 2,000개 주택, 500개 상업용 건물 융자를 클로징했다. 한 업종 한 우물을 30년 동안 파기란 쉽지 않다. 바이어들의 주택구입 주기는 평균 5~7년. 어느 업계보다 고객 순환율이 길다. 게다가 부동산시장의 쓰나미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었다. 많은 동료들이 떠났다. 하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면서 파도크기를 가늠했다. “힘들겠구나”.
하지만 밀려온 파도는 집값 상승, 이자율 하락과 함께 왔다. 기회의 파도에 올라탔다. 다행히 지난해는 전년대비 수익이 70% 올랐다.
지난 30년 동안 주 대표는 바닥을 치기도 했고 부동산 브로커 및 융자 라이센스 관련 분쟁으로 법원도 몇 번 갔다. 또한 하늘을 찌를 기세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주 대표는 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병역의무를 마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 왔다. 테네시주립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 후 친척이 있는 LA로 잡을 찾아 이주했다. 그 당시 융자업계가 호황기여서 친척 권유로 융자회사에서 잡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6개월 동안 일했지만 끝낸 융자건수는 전무였다. 일은 못했지만 언제나 8시에 출근했다. 매일 부동산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했다. 6개월 후부터 융자를 10건씩 끝내자 회사에서 영주권을 지원했다.
이곳 직장 동료와 결혼도 했다. 아들과 딸을 키우며 어느덧 결혼생활도 27년차. 두 아이 모두 UCLA를 졸업하고 각각 회계법인에서, 변호사 준비로 성실하게 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독립 후 몇 년 동안 참 힘들었다. 모기지 이자는 올라가고 주택가격은 끝없이 하락세를 탔다. 업계 동료들은 떠나가고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리커스토어, 택시운전 등 파트 타임을 병행하면서 버텼다.
그 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부동산 시장에 호황기가 왔다. 그 때 돈을 벌어 모기지 렌더를 차렸다. 하지만 곧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집값이 40% 이상 폭락하며 부동산 시장 거품은 꺼지고 차압 주택이 쏟아지고 주택매매가 전멸했다.
최악의 해였다. 그 해 벌어놓은 재산을 모두 날렸다. 모기지 중소업체는 물론 최대 서브프라임 모기지업체인 컨트리와이드등 대형 금융기관도 휘청거리던 시기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영향으로 2008년부터 융자 서류가 까다로워지면서 론받기가 어려웠다. 업계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상처는 꽤 깊었다. 또 고민했다. 그만둘까. 하지만 또 버텼다.
2010년부터 추스리고 다시 시작했다. 융자 가이드라인이 까다로워지면서 세금보고가 없으면 아예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세금보고 한 고객을 단비같이 만나기도 하고, 현금을 계좌에 입금하고 출처증명 요구를 알아서 해달라는 고객과 갈등도 있었다. 론 모디피케이션도 도와주고 차압을 앞둔 고객을 위해 온 시간을 쏟기도 했다.
또한 까다로워진 융자 가이드라인에 맞춰 일도 하다 보니 고객맞춤 문제 해결 노하우가 점차 쌓여갔다.
2013년 이후부터 서서히 집값이 상승과 더불어 회복세를 타자 회사 규모를 축소하고 내실 있는 운영으로 전환한지 7년째.
지난해 팬데믹 속에서 미전국적으로 융자열풍이 불었다. 주 대표도 오전 8시부터 12시간 매일 쉴 사이 없이 바쁘게 일했다.
고객 비율은 한인이 90%다. 모기지 이자는 어디가도 같은 요즘 한인 융자업체를 찾는 한인 고객들 대부분은 대형은행이나 모기지 업체보다 빠른 일처리, 같은 문화 공유에서 오는 편안함에 가치를 둔다.
지난해 낮은 이자율로 재융자를 고민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2.5% 미만으로 내려갈 호기를 일년 내내 기다리는 고객도 있었다.
주대표는 “이자율도 중요하지만 크레딧점수 관리를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융자 중 차구입 등을 하면 부채 비중이 올라가므로 가능한 부채를 줄이고 크레딧점수를 올리고 이자율을 낮춰야 한다. 또한 융자를 받을 때 프리미엄으로 몇 천달러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5년 미만 거주할 집이라면 따져봐야 한다.
지난해는 재융자, 주택구입 뿐만 아니라 팬데믹으로 유례없이 시행된 모기지 유예 프로그램 문의도 많았다. 고객 중에는 모기지 납부가 가능하지만 모기지업체에서 마음대로 유예프로그램으로 전환한 경우도 있었다.
주 대표는 현재까지 2,500건의 융자를 클로징했다. 지금 고객 절반은 기존 고객이다. 5~7년 주기로 고객이 주택구입을 하지만 잊지 않고 주 대표에게 연락한다.
재융자 문의에 눈에 수익이 보이지만 고객입장에서 조언하고, 융자심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집 팔고 나온 고객의 호텔비를 내줘 수수료 대부분을 날린 적도 있었다.
직업이니 수익을 위해 일하지만 책임 있게 서비스를 하기 위해 손님 편에서 일처리를 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고객 100%를 만족시킬 수 없고 호불호가 있지만 감사하게 좋게 봐주는 사람이 더 많았다. 주 대표는 ‘평균의 법칙’을 얘기했다. 계속 책임 있게 서비스를 하면서 클로징한 후 고객 평균 평가가 ‘잘해줬다’가 되면 된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이런 고객은 친구가 되고 이민생활의 지인이 됐다. 어느덧 오래된 고객 자녀가 결혼하고 부모님 장례를 치르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최근 고객 자녀 결혼식 소식에 축하마음을 전달하자 고객이 이바지 음식을 보내며 감사를 전해와 너무 감동받았다는 주 대표는 “고객을 안지가 벌써 30년 전이네”라고 말했다.
주 대표는 “한인들에게 집은 쉼터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힘들 때마다 집 에퀴티로 버티고 집값이 오르면 자녀 결혼과 비즈니스 자금으로 활용했다”며 “되돌아보면 고객들 이민생활의 버팀목이며 삶의 여정의 한 부분이었던 집을 마련하고 지키는데 동행한 것이 지난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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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