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만 장례미사가 벌써 일곱 번째이다. 이번에는 동네 가까이 지내던 분이시라 마음이 조금 더 무겁고, 황망히 가신 탓에 남은 가족들 걱정도 더 하게 된다. 장례미사 때, 떠나보내는 이들의 마음은 모두 다 슬프고 안타깝다. 어느 가족은 상황이 조금 다를 때도 있다. 장례 절차 때, 재산 문제나 남은 감정들을 태우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감정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본다. 또 어느 가족은 멀리 있는 친척, 친구들 모두 모여 슬픔 속에서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도 본다.
오래전, 할머니 한 분의 장례미사가 떠오른다. 가끔 사무실에 오실 일이 있으면, 의자에 앉아 먼저 가신 남편 얘기를 하며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내 옆에 끝까지 있어 준다고 하더니 먼저 갔다며, 남편 떠나신 지 십 년이 넘었음에도 눈물이 마르지 않으셨던 할머니였다.
할머니 장례미사 때, 아드님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이쪽에서 떠나가신 어머님을 저쪽 강가에서 아버님이 기다리며 맞아주고 계시다고. 어머님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금슬 좋으셨던 부모님께서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는 아드님의 생각이 인상 깊었다. 게다가 미사 후, 그 가족은 성당 입구에서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 모두 모여 큰소리로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느 집 초상은 이렇게 가족 화합의 장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멕시코에서는 11월1일과 2일이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축제날이라고 한다. 그 바로 전 날 10월31일 할로윈도 죽은 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니, 우리는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천주교에서도 11월은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이다. 슬픔에 젖어 회한에 가라앉는 달이 아니고, 우리는 죽음과 삶에서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도 또 언젠가는 죽음의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달이다.
올해 떠난 분들은, 젊은 아들도 있고 아직은 젊다고 생각했던 남편도 있고 병상에 오래 누워있던 엄마나 남편도 있다. 남은 가족들이 사랑했던 사람을 보냈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손을 훠이훠이 내저어도 잡히지 않지만, 눈을 들어 멀리멀리 내다봐도 보이지 않지만, 죽은 이들과 우리가 서로 기억 속에 이어져있다고, 그렇게 조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당신이 떠나가도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아픔으로 기억하지 않고 사랑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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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란 /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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