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샌프란시스코에 갈 일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팬데믹 때보다는 도시가 많이 정리되고 깨끗해졌지만 여전히 골목마다 노숙자들의 형편은 변함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도로변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들과 볼 일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로 돌아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반짝반짝한 것들이 내 차에 뿌려져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별이 이렇게 비춰 이런가? 하는 낭만적인 상상도 잠시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차의 뒷쪽 창문이 밖에서 안쪽으로 향하여 깨져 있는 것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이들이랑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남에게만 일어나는 희귀한 일인 줄 알았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311’로 전화를 하라고 하고 본인은 보험사에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치안도 안 좋지만 경찰인력도 많이 부족하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출동은 해 줄 수 없으니 온라인으로 도난 신고를 하라는... ‘이런 상황에 경찰이 돕지 않는구나’ 한국에서의 삶이 더 길었던 나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나보고 어쩌라고...
좀 더 시간이 지나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 차의 트렁크에는 작은 진공청소기가 있고 우선 유리를 치운 다음 청소기로 청소하자 아이들은 오히려 나보다 침착했고 내가 손을 다칠까봐 노심초사했다. 한참동안 그 유리들을 치우고 집에 돌아오는데 굉음과 같은 소음이 뚫린 유리를 뚫고 우리 귀를 공격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기억에 없다.
집에 돌아와 남편을 만나니 안도감이 생겼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새벽, 내가 살면서 무엇에 감사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편이 취직되었을 때,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때, 일이 잘 되었을 때처럼 누가 봐도 좋은 일에만 감사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문득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감사한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도 우리는 다 안전했고, 침착했고, 유리는 고치면 되고 컴퓨터는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다시 사면 되는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이어 외쳐댔다. 그러다보니 좀 더 나아가 내 물건을 훔쳐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날이 오길,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
감사할 일에 감사하기는 참 쉽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인생의 브레이크에서 감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때의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이 감사할 제목이 아닌 게 없다. 그래서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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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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