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이름 하나가 내가 골라
준 가발을 쓰고서 아주 먼 길을 떠났습니다 정성스레
빗고 빗질한 가발 위에 어린 사과 꽃잎의 핀도 꽂아
주었습니다 바짝 마른 꽃의 입술로 버티다 버티다 끝내
상한 몸을 두고 갔으니 더는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불 꺼진 상점 안에서 나는 조금 어두워진 그림자로
앉아있습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끼워 팔던 흘러간
유행가 같은 가발들 바라봅니다 촘촘한 빗 사이로 걸
려 넘어지는 세월의 잔상들, 물결 모양의 부드러운 머
리칼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녀가 쓰고 다니던 눈물로
얼룩진 모자가 긴 목에 짙은 눈썹을 가진 마네킹 위에
씌워져 있습니다
미쳐 잊고 가져가지 못한 부칠 수도 없는 모자의 둘
레가 조금씩 마르기 시작하고,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내력을 알 수 없는 그곳에서는 한 개 사
면 한 개 공짜를 외치는 철없는 가발 장수가 있겠지만
생각건대 그런 시시한 가발은 그녀에게는 더는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가위며 심심해진 빗이며 핀 따위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가게 문을 나섭니다 성긴 눈발이 날
리고 올해 첫눈입니다
<
이경희 / 워싱턴 문인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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