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을 마지막으로 자세히 들여다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거기에는 지도가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던 할머니의 발자국, 만주 벌판의 칼바람, 문화대혁명의 침묵, 개혁개방의 새벽,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온 비행기 한 편. 우리 조선족의 백 년이 어머니의 손금 안에 고스란히 접혀 있습니다.
미국의 조선족은 두 번 떠난 민족입니다.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그때마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의 짐은 보였으나, 어머니의 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았기에 더 무거웠습니다.
낯선 땅의 첫 아침을 떠올려 봅니다. 영어를 모르는 어머니가 자식의 학교 서류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 정적. 단어를 몰라 한 줄을 읽는데 십 분이 걸려도, 어머니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 앞에서만은 모르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자존(自尊)이 어머니의 두 번째 언어였습니다.
네일 가게의 형광등 아래, 식당 주방의 기름 연기 속에서, 청소 카트를 미는 새벽 복도에서,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을 주인공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인생은 늘 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연 없이는 어떤 무대도 서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야 압니다.
어머니의 침묵에는 결이 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할 때의 침묵, 병원비를 걱정할 때의 침묵, 자식이 좋은 소식을 가져왔을 때의 침묵 모두 다른 결의 침묵입니다.
한국말도 중국말도 영어도 충분치 않았던 어머니가, 평생 가장 유창하게 구사한 언어는 이 침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침묵을 읽으며 자랐고, 지금도 그 문법으로 세상을 해석합니다.
미국에서 조선족 2세들이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사업가가 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메리칸 드림’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신의 꿈을 접어서 자식의 꿈에 깔아준 것임을. 펼쳐진 꿈 아래에는 언제나 접힌 꿈이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적어 봅니다.
고향의 봄, 친구들과의 수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던 시간, 좋아했던 노래의 가사, 곱던 손, 꼿꼿하던 허리, 그리고 어쩌면 가장 슬픈 것 자기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 어머니는 ‘누구의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을 희생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전에 ‘희생’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당연함’이야말로 한 세대의 조선족 여성이 이 땅에 남긴 가장 깊은 유산이며, 동시에 우리가 가장 늦게 깨닫는 빚입니다.
오늘, 어머니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꽃 한 송이로는 어머니의 손금에 새겨진 지도를 다 읽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단 하나 어머니의 침묵을 더 오래 들여다보는 것, 어머니가 접어둔 꿈을 펼쳐 그 위에 우리의 삶을 얹는 것입니다.
조선족 어머니. 이 이름은 칭송이 아니라 부채입니다. 갚을 수 없기에 더 깊고, 갚을 수 없기에 평생 품어야 할 이름입니다.
어머니, 당신의 거친 손이 우리의 가장 부드러운 시작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이성열/조선족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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