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청하며, 정오의 햇살이 내리꽂히는 아스팔트 위를 차로 달려 손녀들에게 줄 피자와 연하고 살이 통통한 옥수수를 비닐봉지 가득 사 들고 부지런히 아들 집을 찾았다.
현관에서 두 손녀가 나란히 서서 우리를 반겨줄 때의 따스한 온기가 그리울 때면, 때때로 오늘처럼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방문을 무엇이라도 사들고 찾아가 손녀들 얼굴 한번 보며 보듬어 안아도 보고, 잠시 잠깐 인정 어린 사는 맛을 주고받으며 돌아오곤 한다.
나이가 들고 보면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뿐 아니라 추억어린 물건이나 공간에 이르기까지 돌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애틋함을 자주 느끼는 것은 노화의 현상 탓이라고 할지언정, 이런 감정은 귀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이기에 두고두고 아끼며 산다. 요 근래 애지중지하며 오랫동안 부엌에서 내 손을 벗어난 적이 없던 놋쇠숟가락이 그만 닳다 못해 댕강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한 동안 어쩔 줄을 몰라 접착제로 붙여도 보고 했지만 더 이상은 사용불가란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깟 닳아서 얇아진 숟가락 하나 가지고 안절부절 하다니 핀잔을 받을지 모르나 애틋함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숨어있는 애틋한 감정을 저 하늘의 별들만큼 많이들 품고 살아가고 있다. 사랑이 없다면 애틋함을 품어 볼 수 있을까? 배려심을 생각하게 하는 한 영상으로 오래 전 유튜브에 소개된 두 어린 소년의 신발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도의 어느 기차역 넓은 광장 앞, 한 남루한 어린 소년이 쭈그리고 앉아 형편없이 헤어져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낡은 신발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그때 마침 고급스런 새 구두를 신고 신이 나서 아버지와 함께 지나가는 부유해 보이는 다른 한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의 눈길은 또래 소년의 반짝이는 새 구두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갑자기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며 주위가 소란해지고, 아버지를 뒤쫓던 소년은 신발 한 쪽이 벗겨진 채 급히 기차에 올라탄다. 그 순간 기차는 떠나고 남루한 어린 소년은 떨어진 구두 한 쪽을 주워 들고 떠나는 기차 뒤를 쫒아 열심히 뛰어간다.
자신의 신발을 주워 들고 뛰어오는 소년을 보고 이 새 구두의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순간 안쓰러웠을까? 고마웠을까? 아니면 애틋한 배려심이 생겼을까? 그는 떨어진 구두 한 쪽을 주워 들고 달리는 기차 뒤를 따라 허둥대며 뛰어오는 소년을 향해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 한 쪽 마저 벗어 힘껏 던져준다. 졸지에 새 구두를 가슴에 안은 남루한 소년의 어리둥절한 얼굴이 그대로 크로즈업된다.
어제 새벽 산책 중에 도로 한 가운데에 배달원의 실수인지 한국신문 두 뭉치가 떨어져 있었다. 그냥 방치하면 쓰레기로 버려질 것 같아 이웃 한인 집을 떠올리며, 가만히 신문을 그 집 문 앞에 두고 왔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보니 간밤에 비가 내려서 인지 신문을 싼 비닐봉지 위에 방울방울 빗방울이 맺힌 채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하루만 지나면 구문이 되어버릴 텐데… 오지랖이 넓은 다정도 병이런가?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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