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들을 거닐다 보면 옷에 풀씨가 잔뜩 들러붙어 있을 때가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붙어 있다고 해서 ‘도깨비 가시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도꼬마리가 있다. 도꼬마리는 어린이들이 열매를 던지며 놀 만큼 친숙한 잡초이지만 이 열매를 열어서 속까지 관찰해 본 사람은 문득 놀란다. 도꼬마리 열매 속에는 긴 씨앗과 짧은 씨앗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긴 씨앗은 바로 싹을 틔우는 날쌘돌이 이고, 짧은 씨앗은 싹을 쉽게 틔우지 않는 느림보다. 씨앗의 싹을 빨리 틔우는 것이 좋은지 늦게 틔우는 것이 좋은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도꼬마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둘 중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두 가지 씨앗을 품고 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전략가 잡초’ 중에서)
프란체스코가 설립한 탁발수도회는 엄격한 금식 규율로 유명하다. 수도사들이 리보 토르토에 머물 때 있었던 일이다. 장기 금식이 보름 쯤 지났을 무렵 어느 날 밤 숙소 복도에서 한 수도사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나 죽겠다. 나 죽겠다.” 다른 수도사들이 잠에서 깨어 복도로 몰려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프란체스코가 소리를 지르는 수도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제가 배가 너무 고파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소리 지르던 수도사가 대답했다. 프란체스코는 그 자리에서 수도사들에게 지시했다. ”이번 금식은 이 시간 종료한다.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준비하라. 모두 함께 즐거운 만찬을 나누자.“
만찬이 끝난 후 프란체스코는 강론했다. “우리가 먹을 것 앞에서 육체와 영혼을 해치는 지나친 탐닉을 경계해야 하는 것처럼, 과도한 절제 역시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경건함과 자비심은 둘 다 필요하다. 이 중 하나라도 놓치면 공동체는 흔들린다는 뜻이다.
채소나 꽃의 씨앗은 땅에 뿌리면 일률적으로 균등하게 싹이 난다. 채소나 꽃의 씨앗의 발아시기가 들쑥날쑥하면 농사는 실패한다. 하지만 야생 잡초의 씨앗은 발아 시기가 일정하면 생존율이 낮아진다. 발아시기가 들쑥날쑥하게 해야 거친 야생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다.
야생 잡초의 씨앗마다 개성이 있고 다양하듯 인간의 다양성이 존중받을 때 거친 땅에서 싹을 잘 틔우고 열매도 잘 맺는다고 프란체스코는 믿었다. 도깨비 가시풀이 길이가 다른 두 가지 씨앗을 지니듯이, 엄한 경건성과 함께 풍성한 자비를 지니는 것이 탁발수도회의 규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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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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