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이 있을 뿐 차별은 없다’는 뜻으로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편 38장에 있는 말이다. 공자는 그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면 나이, 빈부, 직업,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건포 한 묶음이라는 최소한의 학비만 내면 누구나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의 타고난 천성은 비슷하며 누구나 가르치면 선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12세기 남송(南宋)의 주희(朱熹)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사람은 부류에 따라 기질과 습속에 물들어 선악에 다름이 있지만 가르침에 의해 선을 회복할 수 있다’고 이 말을 풀이하였다.
공자의 제자는 약 3천 명에 달했으나 끝까지 그를 따른 사람은 72명이었다. 제자 안회(顔回)는 끼니를 자주 거를 만큼 가난했고, 자로(子路)는 신분이 낮은 껄렁패 출신이었다.
자우(字羽)는 못생긴 용모였고, 자고(子羔)는 어리석고 강직했으며, 자우(子牛)는 말이 많고 성질이 조급했으며, 안로(顔路)는 공자보다 여섯 살, 공손룡(公孫龍)은 53세나 어렸다. 자연(子淵)은 노나라 사람이었고 자하(子夏)는 위나라, 자장(子張)은 진(陳)나라, 자사(子思)는 송나라 출신이었다. 또한 자공(子貢)과 염유(冉有)는 부유했고 맹의자(孟懿子)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으니 공자의 제자들은 문자 그대로 각양 각층 각색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르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공자는 논어 술이(述而)편 8장에서 교육의 문호는 누구에게나 열어놓았지만, 교육관은 확실히 하였다. 즉, ‘스스로 깨우치려고 분발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가르치지 않겠다(不憤不啓/불분불계)’라며 배우는 사람의 자세를 중요시하였다.
그는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는 제자 재여(宰予)를 보고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고 한탄하였다(논어 공야장편 10장). 3세기 제갈량(諸葛亮) 또한 아들에게 쓴 훈계서인 계자서(誡子書)에서 ‘배움 없이 재능을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공자는 깨달은 이치를 표현하고자 애쓰지 않는 사람, 한 모퉁이를 가르쳐 주었는데 나머지 셋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거듭해서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자가 되는 법, 권력을 잡는 법 등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제자들의 성격과 특성에 맞추는 교육을 하였고 제자들이 장차 의롭고 예(禮)에 맞게 배움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공자는 배운 지식이 잘못 사용될 때 국가와 사회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첨단 과학과 기술이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지만 이들이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될 때 사회에 큰 해를 끼치고 인류를 고통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은 의로운 일을 위한 것이라는 공자의 교육관을 다시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의 잘못은 그 주위에만 영향이 미칠 뿐이지만 많이 배우고 재주가 많으나 의롭지 못한 사람의 의도된 잘못일수록 그 해악은 국가 사회 차원에 미치게 된다.
이익을 접하게 되면 먼저 그것이 의로운 것인지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도 새로운 지식이나 기회를 얻었을 때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 좋은 목적으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가르침과 부합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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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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