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3월은 미국에서는 ‘여성 역사의 달’(Women’s History Month)이기도 하다. 이 달의 주인공으로 법조계의 살아있는 전설, 미국의 첫 여성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Sandra Day O’Connor)를 조명해본다.
1930년 3월26일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태어난 오코너는 애리조나주에서 광활한 목장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약 2,000마리의 소를 돌보는 목장 일을 거들면서 자연스레 남자 못지않게 거친 일에 익숙해졌고 자립심과 근면, 성실한 자세가 몸에 배었다.
오코너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같은 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당시 로스쿨 동기생 중에는 나중에 연방대법원장으로 위세를 떨치게 되는 윌리엄 랭퀴스트도 있었다. 두 사람은 잠깐 로맨틱한 관계였다고 하는데 오코너가 랭퀴스트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뒷얘기가 전해진다. 랭퀴스트 외에도 3명의 청년이 프러포즈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오코너는 최종 로스쿨 1년 후배 존 오코너를 낙점, 그와 결혼하게 된다.
오코너는 명문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여성 차별이 심했던 당시 법조계 풍토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캘리포니아의 샌 마테오 카운티에서 무보수로 변호사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셋을 출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코너는 애리조나주 검찰청에서 근무하다 공석이 된 주 상원의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73년 텃세 심한 정치판에서 여성 최초로 상원 원내대표가 됨으로써 미국사회의 유리 천장을 깨는 히로인이 되었다.
오코너는 1979년 정계에서 다시 법조계로 돌아와 애리조나주 항소법원 판사로 부임, 2년 만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지명을 받는다. 이때 상원이 만장일치로 오코너를 인준했던 것도 독보적 기록이다.
오코너는 25년간의 대법관 경력을 통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실용적 성향으로 오코너식 갈등 해법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주도한 주요 판결로는 헌법상 낙태권을 재확인해준 ‘플랜드 페런트후드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을 비롯 소수계 우대 대학입학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 합헌판정을 내려준 ‘그루터 대 볼린저’(Grutter v. Bollinger),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의 손을 들어준 ‘부시 대 고어’(Bush v. Gore), 미국 시민은 테러범이라 하더라도 연방정부에 자신이 테러범으로 분류된 이유와 구금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심판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시한 ‘함디 대 럼스펠드’(Hamdi v. Rumsfeld) 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오코너는 2006년,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남편을 간병하기 위해 대법관에서 물러났지만 본인도 최근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오코너가 미국 사회에 남긴 정신적 유산은 선구적인 리더십과 정의에 대한 헌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헌법 수호와 개인의 권리보호, 특히 여성의 장벽을 허무는 데 앞장섰다. “여성이 힘을 얻으면 장벽이 무너질 것입니다. 사회가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보게 되면 더 많은 여성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그녀의 평소 선구적 신념은 오늘의 양성평등 사회를 이룩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9명 정원의 연방대법원에 현재 4명의 여성 대법관이 재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오코너가 임명되기까지 여성의 불모지였던 시대에 비하면 비약적 발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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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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