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아 불어다오”… 돛접고 엔진으로 1~2노트씩 전진
▶ 1노트=시속 1.15마일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
디젤 연료 아끼려 전전긍긍
고독감에 새 한 마리도 친구
참치 낚시로 생선회 파티도3월14일 화요일.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리나 델 레이를 출항한지 10일이 지났다. 배를 손보느라 샌디에고에서 9일 오전 재출발했으니 정확히 5일이 지났다.
어느덧 배는 바람이 없는 무풍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그나텔라호는 3노트 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그나마 스피네커 폴을 헤드 돛에 연결했기에 이 속도로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다. 하늘의 일부분이 파르스름 열린 모습을 보였다가도 이내 닫혀 버린다.
현재 GPS 위치는 북위 24도 서경 121도를 가르키고 있다. 1차 기항지인 하와이까지 4분의 1가량 온 것 같다. 이런 상태라면 보름은 더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바람아 불어만다오…
3월15일.
엄한 디젤 엔진만 고생하고 있다. 무풍지대를 통과하기 위해 50시간 이상 돛 대신 엔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마틴 곽 후원회장이 알려주는 기상정보로는 위도상으로 1도 정도 남하하면 동풍을 만난다는데 아직 바람의 바뀜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이 우리들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디젤 연료를 반 이상 태운 것 같은데 조바심이 난다. 엔진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할까 걱정도 된다.
무풍지대를 지나다 보니 요리할 시간이 충분했다, 젊은 시절 카페를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남진우 대장이 아니라 ‘남 셰프’로 변신했다.
오늘은 아침식사 메뉴로 마지막 남은 빵을 버터에 구워 그 위에 계란과 베이컨, 아보카도, 치즈를 얹어 먹었다. 저녁식사는 메밀국수 면으로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온갖 재료를 바닷물에 씻어 끓였는데 모두들 대만족이다.
어떤 날은 각종 야채와 스팸을 각썰어 넣은 볶음밥, 볶음 고추장과 참기름을 뜸뿍 넣은 산채비빔밥을 먹기도 했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 반바지와 반팔로 갈아 입으니 활동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3월16일.
밤새 항해했지만 좌표에 찍힌 항해 거리는 별반 차이가 없다. 북위 21도가 가까워졌는데도 바람은 바뀌지 않는다. 디젤 연료를 아끼려 헤드 돛에 의지한채 1~2 노트 속도로 느림보 걸음이다. 지상에서 알려준대로면 동풍이 불어줘야 하는데 소식이 깜깜하다.
더딘 항해 탓에 대원들 모두 말이 없어졌다. 4명이 함께 항해하지만 적막감과 함께 고독함이 밀려 온다. 이름모를 작은 새 한 마리가 우리 요트에 올라 타 이틀을 동행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대원들 표정에 섭섭함이 가득하다.
“잡았다!”
낚시대 바늘에 물고기가 물리는 순간 적막감을 깬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20파운드 가량 나가는 옐로핀 투나가 잡힌 것이다. 해체 작업을 해서 싱싱한 생선회를 점심 메뉴로 올렸다. 대원들과 모처럼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사를 나눴다.
3월17일.
불안감을 안고 아침을 맞이한다. 지상에서 보내온 메세지는 오늘 북동품이 15노트 속도로 분다고 하는데 북위 20도까지 내려 왔는데도 바람은 아직 소식이 없다. 디젤도 이젠 25갤런으로 줄어 들었는데 난감하다.
북위 19도 가까이 내려가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내일 아침이면 바람과 선체가 90도 각도로 움직이는 빔 리치(beam reach)에서 135도 각도로 더 빨리 항해할 수 있는 브로드 리치(broad reach)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또 한 마리의 물고기가 걸려 올라 왔다. 저녁 때 신나는 음악과 함께 간만에 제대로된 세일링을 했다. 밤 9시 현재 위치는 북위 20도 서경 125도.
3월19일 일요일.
어제 하루 종일 표류하다시피 항해를 하다 보니 배터리가 37%까지 줄었다. 풍력발전기가 가동되기는 하지만 냉장고, 냉동고, 오토 파일럿, GPS 플로터 등을 사용하고 있어 충전상태는 늘 제자리다.
바람과 돛이 60도 각도로 움직이는 클로즈 리치(close reach) 상태여서 배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활동하기가 까다롭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배가 좀 더 와일드한 느낌으로 나아간다.
이런 상황이 하와이까지 쭉 이어지기를 희망하면서 모처럼 낮잠을 청했다. 이제부턴 모든 항해가 순조로울 것이라 기대했다. 폭풍 수준의 세찬 뒷바람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정리=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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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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