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킹에 갔다. 오랜만이다. 지나가다 눈에 띈 것이 아니고 기억을 더듬고 검색을 해서 찾아갔다. 그것도 혼자 가면서.
혼자 먹는 혼밥. 한국에서는 왕따, 혹은 사회생활 부적격자의 낙인이었다. 점심 시간을 앞둔 직장에서는 삼삼오오 무리지어 여기저기 맛집 혹은 가성비 좋다는 식당을 찾아가는 대열에 행여나 낙오될까 조바심을 내고는 했다. 암묵적 점심동맹이 맺어지고 어딘가에는 속해야 안심이 됐다. 그러나 이민 생활에서의 혼밥은 기본이다.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홀로 깊은 생각에 빠져보는 성찰과 평온의 시간이다.
주류 면허증을 받으러 오래 전 살던 근처에 있는 게이더스버그에 와서 일을 보고 나오니 점심 때였다. 락빌 시내에 가서 케밥, 월남국수, 파드타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맛집을 찾아볼까, 명성만 들어온 에티오피아 식당을 가볼까 이리저리 망설임이 버거킹으로 낙착된 것은, 글쎄 나도 모르겠다. 그냥 거기 그 집이 떠올랐다.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기 전후, 삼십 년 전 미국생활 초기에는 맥도날드와 버거킹을 자주 갔었다. 빅맥과 와퍼를 유달리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오로지 해피밀과 키즈밀 때문이었다. 토이자러스에 가서 장난감을 사줄 형편은 못 되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토이를 애에게 안겨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선택이었다.
For here or to go? 덩치 큰 어른이 혼자 테이블 차지하고 구차하게 애들 메뉴 먹는 모습이 괜히 눈치 보여, 투고!를 일관했다. 애 가져다 주는 냥 작은 봉투를 받아들고 주차장 한 귀퉁이 차 안에 들어가 먹곤 했다. 얼음 적게 채워도 늘 모자란 소다, 그 작은 컵 들고 리필하러 매장에 다시 들어가지는 못하겠더라. 그래도 애한테 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목마름은 참을 만하다.
그렇다고 오늘도 키즈밀을 주문한 것은 아니고…. 와퍼 세트를 받아 실내 놀이터가 붙은 자리에 앉았다. 주간지를 찍던 인쇄소 바로 앞이기도 한 이 버거킹은 플레이그라운드가 제법 크다. 아이들의 생일잔치 장소이기도 했다. 짝퉁 미키마우스 복장의 언니 오빠 직원들이 손뼉 맞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던 처키치즈가 꼬꼬마들의 너나없는 소원이었는데 그럴 형편이 안될 때 찾는 곳이 여기였다. 물론 그조차 어려운 집들도 있었고.
세상물정 배워가는 속도는 애들이 더 겁나 버거킹 종이왕관의 마법은 길게 가지 못했다. 마당 너른 집이 있어 놀이기구에 코빨간 클라운을 불러올 수도 없고, 애 생일 돌아오면 걱정도 돌아온다. 하나 있는 자식 기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 누군들 아니 그러겠나. 초대 받아가면 남들은 어떻게 하나 어깨 너머로 눈치껏 배운다. 짧은 영어로 파티 컨셉의 스케이트장, 도자기 공방, 아트 스튜디오 찾아가 준비하느라 아내가 고생이 많았다.
구디 백은 뭘로 채우지, 그런 고민을 같이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먹다 보니 긴 세월 와퍼는 맛이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맛집을 찾는 것도 한창 때의 정욕인 것이다. 추억으로 찾고, 그 맛이 설사기억을 배반해도 탓하고 싶지 않은 그런 장소가 있다. 그곳이 내게는 흔하디 흔한 버거킹이고 맥도날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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