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은 서기 전 624년 네팔과 인도 북부 지역에 있었던 카필라국의 왕자로 탄생하셨다. 성은 고따마 이름은 싯닷타이며,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라 한다. 풀과 나무가 꽃을 피운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아래서 태어나 오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말하였다.
“ 하늘 위 하늘 아래/나 오직 존귀하니/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마땅히 평안케 하리라.”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가르치셨는가를 말하고 있다. 싯닷타는 모든 사람에게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서 출가 하였다.
마침내 모든 고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셨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반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셨다. 많은 제자들이 그 진리를 깨달았다.
부처님께서는 평생동안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말씀하셨다. 그 중에 세 가지 중요한 가르침은 무상, 무아, 고(열반)이다. 무상은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무아는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인 생각과 몸에서는 ‘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라고 하면 변함이 없는 실체여야 하고 삶을 나투는 중심이며 주인이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오직 존귀하다’는 진실한 ‘나’의 선언이다. 싯닷타 라는 몸을 나라고 한 것이 아니다. 몸은 삶을 나투는 주인이 아니라 나투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나라는 생각에 잡혀서 욕심 내고, 성내고, 남을 해치고, 나를 해치는 것이 고의 발생이다. 그런데 끝없이 변하는 몸이나 생각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것이 있다. 모습 없는 마음이다.
삶을 나투는 주처이며, 중심이며, 주인이다. 이렇게 ‘나’를 깨달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이것이 열반이다.
‘나가 없다’는 삶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몸은 자동차와 같다. 차는 타다가 낡으면 새로운 차를 탄다. 몸은 죽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몸의 나’에 집착하면 이기심의 좁은 눈으로 보게 되고 다투게 된다. 그러나 ‘나가 없을 때’ 사랑은 몸과 생각을 통해서 나투어진다.
또, 생각은 우리가 생명을 사용하는 도구인데 우리는 생각에 끌려 다닌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삶이 괴롭다. 생각은 허공에 흘러가는 구름과 같아서 놓아두면 스스로 사라진다.
그리고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 허공 같은 마음이 주인이다. 나의 근원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괴로움은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나’를 보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 그렇게 ‘나’에게 돌아간 것을 열반이라 한다.
열반은 모든 존재의 바탕이기에 모두가 평등하다. 열반의 지혜는 본래 나에게 있으니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깨닫고 사용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 영원한 오늘에 오신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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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공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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