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2세 남성)는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한 달 동안 우울에 빠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대체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 중 A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된다고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요.” A는 평소 관심이 없던 모임들 여러 곳에 한꺼번에 가입하고 새 여성을 만나는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오던 취직 시험공부는 접어둔 채 동시에 여러 여성에게 연락을 하면서 비싼 선물을 사주었고 상대방의 거절에도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하다가 심각하게 다투는 일도 늘어났다.
중학교 때까지는 외향적이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고 이로 인해 부모님과도 갈등이 심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후로 1년에 1-2차례 우울감이 들면서 의욕이 떨어지고 학업에 어려움을 느꼈지만 대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이 회복되고 본래의 외향적인 성격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지냈으며, 주변으로부터 활달한 성격이라며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때로 행동이나 말이 지나치다는 비난도 들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질투하고 깎아내리려는 거죠. 한마디로 내가 너무 잘났다는 게 문제입니다.”
B(29세 여성)는 요즘 웬일인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의욕이 생기면서 밤늦게까지 간호사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한다. 잠을 2-3시간 밖에 자지 않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 평소 잘 연락하지 않던 친척과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의 계획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RN이 되면 조만간 미국 최대 병원들을 사들여서 자신이 CEO가 된다는 꿈을 꾼다. 갑자기 변한 모습에 가족들이 걱정할라치면 B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대해 늘어놓는다. 값비싼 물건을 사고 과도한 치장을 하며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다. 술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싸움을 벌여 경찰서에도 다녀왔다. 크레딧 카드로 한꺼번에 수천불짜리 물건을 오더하여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B는 고등학교 시절 따돌림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부모가 2번이나 전학을 시켰으나 또 다시 반복되는 따돌림으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졌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으나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다. “휴학을 결정할 때마다 우울하고 의욕이 없고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죠.” 2년 전 취직을 했으나 어디서든 길어야 3개월 이상 근무한 적이 없다. 한두 달 전,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친구가 타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 며칠 전부터 다시 기분이 급상승하였다.
A나 B의 증세는 양극성장애(조울증)로 볼 수 있다. 수면 욕구가 떨어지고 사고가 빠르게 날아간다. 평소보다 말수가 많아지고 일상에서 고통스러운 결과가 나타나는데도 어떤 활동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이런 사람들을 설명하는 정신의학용어가 ‘팽창된 자존감’(Inflated Self-esteem)이다. ‘자존감’이 현대인의 화두로 떠오른 이후, 사람들은 손상되고 쪼그라든 자존감을 세우는 일에 집중한다. 하지만 조울증의 ‘조증’ 단계에서는 자존감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문제다.
최근 심리학자들은 ‘자존감’보다 ‘자기감’을 중시한다. 자존감은 타인을 변화시킬 때 올라간다. 반면 자기감은 환경을 바꿀 때 올라간다. 자존감 불균형에서 벗어나려면 자기감정을 알아차려 자기감을 올려야 한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마인드풀니스(알아차림, 마음 챙김)의 소중함이 여기에 있다. 조울증을 위한 비 약물치료, 마인드풀니스 모임은 각 지역마다 잘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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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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