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에서 망설이는 숲
울지 못하던 새가 울음을 준비하듯 가을이 온다
한번 붉어 보지도 못하고 자작나무 잎이 누렇게 물든다
바람이 군침을 휘날리며 숲을 뜯어 먹는다
혼자 떠돌던 나날들 자신도 스스로를 길들이지 못한
늑대의 흰 눈동자 속으로 겨울이 다가선다
혹한의 바이칼을 건너다 산채로 얼어붙었던
수십만의 영혼을 자작나무는 기억한다
시간을 타이르고 무릎 꿇려서 기다림으로 머물게 하는 숲
기다림에서 시간을 털어내고 뼈처럼 서 있는 숲
추위는 하얗게 뼛속에 남아 한여름에도 숲은 겨울이었다
추울수록 기억은 싱싱하게 저장되지만 상처는 아물지 못한다
기다림은 또 다른 기다림을 낳고 그 기다림에 슬쩍 묻어와서
삶을 헤집고 몰아세우던 것들이 잠잠해지면
막막함처럼 눈이 내린다
하얗게 표백되어 겨울에 갇힌 숲
상처는 아무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기억의 뚜껑을 열면 상처는 이미 지워져 있다
언젠가 스칠 어떤 바람을 상상하고 그 바람에 기대를 걸면
닥쳐올 아득한 시간은 어느새 기다림으로 바뀐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강물은 흘러가듯
무엇을 기다렸는지 따져 묻지 않아도
기다림 하나만으로 숲은 살아간다
혹한의 한겨울
자작나무 숲은 가늘게 서 있다
<윤석호 워싱턴문인회 회원,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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