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새해 첫 기적/반칠환
무덤덤하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지만, 해마다 새해 첫 날 꼭 읽는 시다. 처음 읽을 때 부터 나는 굼벵이구나 싶은게 위로가 됬다. 고향집 텃밭에 단호박, 옥수수, 감자는 좋은 여름 간식이었다. 특히 햇감자는 맛도 좋지만 감자를 캐는 그 재미가 더해져 참 신나는 행사였다. 감자를 캐다 보면 종종 굼벵이를 만난다. ‘굼벵이(흰점박이 꽃무지 애벌레)는 흙 또는 부엽토 속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면 죽을 힘을 다 해서 흙 속으로 들어가려고 (구르는 것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치열한 전투과정이다. 박승규 전문기자<내포곤충학교>’ 모를 땐 몰랐는데 알고나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이 미안해지고, 나는 굼벵이구나 했던 것이 갑자기 처연해졌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 황새의 나는 것, 말이 뛰는 것, 거북이가 걷는 것, 달팽이의 기는 것이 각자의 최선이듯 구르는 것 역시 굼벵이의 최선일테니까. 황새가 날았다고 해서 쉽기만 한 한 해를 살아왔을리 없다. 또 황새라고 날기만 하고 말이라고 뛰기만 했을까? 그럼에도 자기 능력껏 최선을 다해 한 해를 살아냈기에 새해 첫날을 함께 맞는 기적을 이뤘다.
우스개 소리로 시를 풀어보자면 구르는 굼벵이 위에 기는 달팽이, 그 위에 걷는 거북이, 그 위에 뛰는 말, 그 위에 나는 놈 황새. 역시 문제는 구르는 재주 밖에 없는 굼벵이다. 굼벵이 같이 구르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음을 알고 난 후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는 세모에 나를 위한 헌시가 되었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나태주
한심할 수도 있지만 새해의 각오 중 하나는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굴러 수십 번의 새해 첫 기적을 경험하기까지 수고한 자신에게 너그럽고 관대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나를 즐겁게 하는 시간을 위해 구르기를 멈추더라도 조바심내지 않고 나와 사이좋은 한 해, 유쾌하고 즐거운 한 해를 누리려고 한다. 때론 바위처럼 아무 것도 안하고 있어도 세상 편하게. 그러니 굼벵이 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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