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10일 치러지는 22대 한국 총선에 나갈 후보 결정을 둘러싸고 정당들이 내홍을 겪고 있다. 4년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춤을 추는 공천제도 때문이다.
각 당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과 기준을 정해 심사를 하다 보니 혼란과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표면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자와 실세들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당인 국민의 힘은 이번 총선에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내세우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런 ‘물갈이’ 분위기 속에서 상당수의 다선 중진의원들은 불안해하면서 “일률적으로 우리를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진들을 특히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른바 ‘윤심 공천’이다.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대통령실 참모와 정부 차출 인사들의 숫자만 5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여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지역 출마를 원하고 있다. 중진들은 대개 이런 지역 출신이다.
공천 신청자들이 확정되면서 이들 사이의 신경전이 시작됐으며 최종 공천결과가 나오게 되면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심’ 뿐 아니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의중, 즉 ‘한심’이 무엇인지 드러나고 이것이 ‘윤심’과 충돌할 경우에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친명’ 여부, 즉 대표인 이재명 대표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후보가 결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가 법적,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는 일부 친명인사들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일부 현역의원들과 공천 희망자들은 여기에 불만을 품고 당을 떠났다.
총선에 나설 각 당의 후보들이 확정되기 시작하면 컷오프 되거나 탈락한 정치인들과 정치지망생들의 성토와 볼멘소리로 정치권은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공천’이 아닌 ‘사천’이라는 비판에서부터 ‘막천’(막장공천)이라는 독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험한 표현들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총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한국 정치의 구태이다.
한국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정당 간의 경쟁은 비교적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정당 내 경쟁은 여전히 비민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당이 일방적으로 후보를 결정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른바 ‘내려꽂기식 공천‘이다.
후보 결정은 미국처럼 예비 선거를 통해 당원들과 유권자들의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하는 게 가장 민주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정치현실상 이런 방식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워낙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심한데다 경선을 할 만큼 충분한 당원 베이스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총선이 치러질 때마다 정당들은 ‘물갈이’와 ‘뉴 페이스’를 전면에 내세운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총선 때마다 30%가 넘는 현역의원들이 물갈이되는 등 뉴 페이스들이 대거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물갈이의 결과로 한국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새로워 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 사이 경제적·문화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정치는 이런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이끌고 갈 인물들을 결정하는 과정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총선 때마다 공천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과 이전투구, 그리고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은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풍경들이다.
유권자들과 국민들의 뜻이 아닌, 공천 결정권을 가진 실세의 눈치를 먼저 살필 수밖에 없는 현재의 공천 시스템이 달라지지 않는 한 선진 정치문화의 정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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