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시계를 몇 번이고 밀치며 잠에 빠져들던 젊은날의 새벽. 이제는 알람의 재촉도 필요없는 느슨한 일상이건만 이른 새벽 일찍 잠이 깬다. 나이에 따른 신체의 의학적 요인이 있음을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세월의 섭리로 느슨해진 하루련만 습관이 되어버린 부지런함은 여전히 씨줄 날줄을 엮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불면증을 이동해서 새벽예배로 붙여넣기를 하고 문밖을 나선다. 2월의 추위로 얼음이 쩡쩡했으나 상쾌한 새벽이다.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는 칠흑의 황량한 하늘에는 새벽녘에야 잠깐 볼 수 있다는 푸른색의 그믐달이 허리 굽히고 아직 잠든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초라한 외로움을 두른 듯 갸날픈 모습이 마치 허기를 채우려는 빈 그릇과도 같이 느껴진다. 스치는 찬바람에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차창 밖으로 줄곧 따라오는 그를 바라보며 교회로 달린다. 예배 도중에도 내내 그믐달의 허기진 잔상이 마치 나의 모습 같아 뇌리에서 좀체로 떠나지 않는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는 여전히 나의 정방향에 남아 채워지길 원하는 슬픈 모양을 하고 있다.
오래 전 고인이 되신 소설가 나도향의 수필 중에서 그믐달은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은 애절한 맛이 있다고도 하고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거나 또는 가장 한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많이 보아준다고, 그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싶다고 표현한 글이 떠올랐다.
또 어느 새벽엔가 만날 수 있겠지, 그믐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한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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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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