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고래처럼 힘센 사람이나 나라끼리 싸우는 통에 아무 상관도 없는 약한 사람이나 나라가 피해를 볼 때 쓰인다. 한자 성어로는 ‘경전하사(鯨戰蝦死)’라고 한다. 청일전쟁·러일전쟁 등으로 우리 국토가 초토화됐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역사를 전할 때 이 속담이 자주 거론된다.
한국학 전문가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 교수가 최근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적인 변화를 다룬 책 ‘새우에서 고래로’를 펴냈다. 그는 1948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주요 사건들을 살피면서 한국이 ‘새우’에서 ‘고래’로 성장했다고 조명했다. 그는 “한국을 바꿔놓은 가장 큰 사건은 한강의 기적과 뒤따라온 민주주의로의 전환”이라며 서구 국가들이 길게는 200년 동안 이룬 성과를 한국이 20~30년 만에 이룩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이 해방 이후 200배가량 증가했을 정도로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여야 간의 정권 교체가 수차례 있었을 정도로 민주주의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고 문화적으로는 K팝·K드라마·K푸드·K컬처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고도화하는 가운데 북중러가 급속도로 밀착하고 있다. 중국 권력 서열 3위의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11일 북한을 방문해 고위 관계자들을 만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북중 관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올해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밝혔다. 미일은 이에 맞서 10일 정상회담에서 첨단 무기의 공동 개발·생산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동맹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다음 달 26~27일쯤에는 한중일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신냉전·블록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동북아 안보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한국이 ‘고래 싸움’에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스스로 힘을 키워서 진짜 고래가 돼야 한다. 선거 이후 국론을 모아가면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공조 관계를 심화시키는 한편 경제적으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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