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다.”
방글라데시의 빈민 구제 운동가 무함마드 유누스는 2007년 12월 이 같은 공개 비난을 받았다. 당시 독설을 쏟아낸 장본인은 야권의 유력 정치인 셰이크 하시나였다. 유누스가 반부패 정당 ‘시민의힘’을 창당하며 개혁 세력 결집에 나서자 경쟁자인 하시나가 견제에 나선 것이다. 유누스는 세력 결집에 실패했고 2009년 하시나 정권 출범 후 탄압 받다가 자신이 만든 그라민뱅크 총재직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위상은 역전됐다. 독재를 일삼은 하시나 총리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 속에 이달 5일 사임하고 해외로 도피하자 유누스가 과도정부 수장직에 올랐다. 유누스는 의회 해산 후 90일 이내에 실시되는 총선을 관리하며 차기 정부 수립을 위한 사태 수습 역할을 하게 됐다.
1940년에 태어난 유누스는 방글라데시 치타공대 졸업 후 미국 밴더빌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치타공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1974년 대기근을 계기로 빈곤 문제를 연구했다. 가난 퇴치에 소액 자본이 필요함을 느낀 그는 저신용자에게도 무담보로 저리의 소액 자립 자금을 빌려주는 사업을 추진한 끝에 1983년 그라민뱅크를 설립했다. 그는 2006년 가난 구제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유누스는 옛 군부 세력의 민족주의당(BNP)이 2006년 민중 봉기로 실각하자 정치 개혁을 시도하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런 유누스가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하시나 정권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었다.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의 딸이자 민주화 투사로 정계에 투신한 하시나는 1996~2001년과 2009~2024년 8월에 걸쳐 내각책임제의 총리를 맡았다. 그러나 초법적 국정운영과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민심을 잃고 최근 독립유공자 자녀에 대한 공직 할당제 도입으로 민중 봉기를 촉발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하시나의 실각은 개혁을 내세워 집권한 세력도 기득권 지키기에 집착하면 국민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 ‘운동권 셀프 특혜’ 비판을 받으면서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밑어붙였던 더불어민주당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병권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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