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에 우리 집 앞마당에 심어 놓은 작은 감나무가 첫가을엔 감이 한 개 열렸고 그 이듬해엔 꽃이 많이 피어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했는데 세찬 비가 몇 번 오더니 꽃이 지고 예쁘게 달렸던 올망졸망한 작은 열매들이 다 떨어져 크게 실망했었다.
책도 읽고 지인들의 충고를 들으며 나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하면서 계란껍질, 우유까지 감나무 밑에 부어가며 정성을 기울여서 그런지 작년엔 몇 해 동안에 꽤 커버린 감나무에서 단감 41개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려 이웃들과 나눠 먹으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올해엔 더 많이 수확하기를 기대하면서 지난 6월 말, 유럽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그 아주 예쁘게 많이 피었던 하얀 감꽃들이 거의 다 떨어져 있지 않은가! 나의 부재 시 집을 좀 잘 살펴달라고 부탁한 옆집의 가나 출신 젊은 엄마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없는 동안 세찬 바람을 대동한 소낙비가 여러 번 내렸다고 이야기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으로 돋보기까지 끼고 감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몇 개의 작은 감들이 달려 있어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이 열매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만의 작은 행복을 느끼곤 한다. 몇 개 밖에 안 달렸지만, 주먹만한 연두색 감들이 짙은 오렌지로 변하고 있어 가을이 깊어져 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비엔나에 사시는 선배 언니 댁엔 30여 년 전에 심었다는 고목같이 보이는 큰 감나무가 세 그루가 있는데 매년 단감이 주렁주렁 열리어 늦가을엔 감을 다 따서 이웃들이나 지기들에게 나누어 주시고도 남아서 감 잼도 만드시고 감말랭이도 만드셔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시기도 해서 늦가을이 되면 이 언니한테서 감 선물 받기를 은근히 기대하곤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언니를 만났는데 올해엔 글쎄 감이 하나도 안 열렸다는 슬픈(?) 소식을 들으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언 옛날 여중 시절, 국어책에 실렸던 신지식 선생님의 ‘감이 익을 무렵’을 읽으며 감수성 많은 사춘기 소녀로서 스토리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여러 과일 중에서 단감을 좋아하게 되었고 감나무 한 그루라도 우리 집 앞마당에서 푸르게 자라고 있다는 자체가 대견스럽고 마냥 행복하다.
또 대학원 시절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캠퍼스엔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감나무들이 뜨문뜨문 있어서 가을이면 오렌지빛 단감들이 몇 개씩 열리곤 했는데 아무도 따지를 않아 잔디 위에 떨어져 바람에 밀려 뒹구르는 모습을 보며 향수에 젖었던 기억도 난다. 따서 먹어 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안 따니 동양인 여학생이 혼자서 따보려는 용기 부족으로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경상도 시골이 고향인 우리 남편은 국민학교 6학년 때 영주 부석사로 2박 3일 수학여행을 갔던 추억을 말해주곤 했는데 부석사 주위에 고(고염)나무들이 많아서 남학생들이 나무에 올라 맛있게 잘 익은 조그만 고욤을 마구 따먹었다고 했다. 자기는 반장이어서 고욤들이 가장 많이 열린 나무에 제일 먼저 올라가 열매가 작아서 따는 즉시로 입에 속속 넣다 보니 꽤나 많이 먹었던지 그날 밤 전기도 없던 캄캄한 밤에 자주 밖에 나가야만 하는 곤욕을 치렀다고 해서 한창 웃었던 기억도 난다.
또 산책하다 정원들이 예쁘게 잘 가꾸어진 주택가를 지나가다 보면 앞마당에 커다란 감나무의 늘어진 가지들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들을 보면 이 집이 분명히 한국 사람이 사는 집이려니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보니 커다란 대추나무도 있는 게 아닌가! 이런 풍경을 보게 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기쁨과 따뜻한 정을 느끼게 되니 이역 생활도 반세기를 훨씬 넘긴 나이지만 우리 조국의 정서는 결코 잊을 수 없음을 실감한다.
이제 가을이 더 깊어져서 몇 개 달린 감 수확의 기쁨을 기다리자니 자연히 감과 밤, 대추를 그렇게 좋아하던 옛 임이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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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스더 라우든 카운티 공립학교 전직 교사 애쉬번,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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