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자주 오는 뉴저지에 겨울철 제설 시스템은 완벽하게 돼있다. 밤에 눈 예보가 있는 날이면 초저녁부터 도로마다 제설차가 바삐 움직이고 아파트에는 아예 차 한 대와 인부 너 댓 명이 들이 닥쳐 철야를 한다. 도로나 주차장은 한 톨의 눈이 쌓일 틈 없이 밀어내고 인도에는 염화칼슘으로 도배를 한다.
그래도 눈 온 다음날은 운전하지 말라는 딸의 경고가 추상(?) 같았다. 3월이 지나가면서 그렇게 통행에 불편을 주던 눈도, 눈 오는 날 딸의 걱정도 추억이 돼 버린다. 다만 사람들이 발길이 미치지 않은 산골짝에 덮여있는 눈들 그리고 도로에서 쫓겨나 길섶에 쌓인 눈 더미의 잔해가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한국의 탄핵 정국이 하루 속히 마무리되기를 염원한다. 넉 달 동안이나 길가에 방치됐던 더러운 눈 더미가 어서 치워져야한다. 하지만 그 눈 더미에 파묻혀 있던 각종 오물이 세상에 드러나고 거기서 녹아내리는 구정물이 질펀해지면서 눈 더미로 있을 때보다 한동안은 더 추하고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깊이 파인 분열의 골을 메우자면 통합과 화해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겪은 굴곡 된 역사에서 화해가 정략적으로 가볍게 처리된 경우가 많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피해자가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매달리는 화해,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게 갑으로 남는 화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니었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알지만 잡초는 영원히 잡초이지 본 식물이 되지 않는다. 국제사회로부터 ‘결함 있는 민주주의’ 라는 오명을 받은 한국이 다시 ‘완전한 민주주의’로 회복하자면 겪어야 할 과정이 있다. 썩은 살점을 도려내야 한다.
자유당 정권이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이에 항의해 일어났던 4.19 혁명이 65주년을 맞는다. 지금쯤 그곳에 개나리꽃이 피었을까?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가면 ‘국립 4.19 묘지’가 있고 그 옆에 ‘4.19 혁명 기념관’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겪은 4.19 혁명의 전모를 ‘아! 그날!’ 이란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보관하던 중 5년 전에 기증한 역사자료도 그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당시를 복기해 보면 4.19 혁명이 어떤 수습책을 밟아갔는지를 참고할 수 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자진 하야 후 망명을 했고 권력의 2인자였던 이기붕 씨 부부와 아들은 권총자살, 내무장관 최인규 와 경호실장 곽영주 그리고 폭력 주동자 이정재, 임화수 등은 사형에 처하는 준엄한 심판이 있었다.
정치인들은 과도내각을 구성했고 그 과도내각에서 개헌을 한 다음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순서를 밟았다. 정권 교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다시는 독재 정권이 발붙일 수 없게 하는 새로운 공화체제에 관한 국민적인 합의와 실천이다.
봄이 늦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봄은 기어이 올 것이다. 식물이 겨울 휴면상태에서 깨어나자면 일정기간 추운 날씨를 경험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꽃이 피자면 다시 따뜻한 날씨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때인가,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그 날은 온다. ‘눈 녹은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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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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